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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May 18. 2023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흔하디 흔한 말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가끔 머릿속에서 돌고 도는 말들이 있다. 왜 머릿속에 있는지는 의미도 알 수 없고 이유도 모른다. 머리를 감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한 번씩 떠오르는 말들. 이 중에서 최근에는 이 두 가지 말들이 가끔 떠오른다.


“인생은 한 번뿐이에요.”

“인생 짧아요.”


어쩌면 이번에 했던 자이요가명상 SCT(SCT, Self-Compassion Training) 과정에서 민진희 원장님이 조언했던 말들 때문에 계속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최근에 들었고, 그때 다시 한번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깊게 자각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생은 짧다는 것.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아주 쉽게 이 말을 했다. 아주 잘 아는 말들이기에 짧디 짧고 한 번뿐인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말들을 늘여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 뇌리에 박혀 계속 떠오르기에 적어본다.


이 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시던 시절이었다. 처음 아빠가 입원했을 때는 잘 걷고, 이야기하고 정상인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 모두 이런 시간이 내일도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며칠 만에 걷지 못하게 되었고 곧 상체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서울에 있는 직장의 양해를 받아 2주 넘게 쉬고 있었기 때문에 옆에서 아빠의 신체 변화와 감정의 변화까지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몸이 당신 마음 같이 움직이지 못하던 때에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아이.. 내가 왜 이런다냐..”


그때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눈빛 속에는 어떤 당혹감과 두려움이 혼재되어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날지 몰랐다는 듯이.


나는 그때 뭐랄까, 이런 걸 느꼈다. 내 아버지로서 겪는 아픔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겪는, 한 살아있는 존재가 겪는 당혹스러운 진실에 대한 슬픔이 무엇인지를.


시한부의 인생을 판정받았던 사람도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날이 ‘오늘’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일은 항상 하던 자연스러운 것들 중 무엇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지도 말이다. 그때 내가 옆에서 느낀 아빠가 느낀 감정은 생의 미련보다도 뭐랄까.. 그래, 당혹스러움이었던 것 같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는 안다. 사람은 죽는다. 아니, 세상 만물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죽는다. 하다못해 영원불멸할 것 같은 사물도, 이 우주도 끝이 있다. 우리는 당연하고 당연한 우주의 진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칠 때 진정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삶은 짧고, 생은 한 번 뿐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머리로는 알지만 나의 호흡은 당연히 1분 후에도 있을 것이고, 나의 몸은 앞으로도 당연히 나의 명령에 따를 것이고, 오늘이 가면 내일의 삶이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니까.


결국에는, ‘정말로는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내일을 생각한다. 생각으로는 이 말들을 이해했다고 여기지만, 무의식의 깊은 지점에서 미래는 당연히 나에게 주어질 것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권리였던 것처럼. 나의 다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당연히 주어진 권리처럼 생각되었다면, 결국은 모르는 것이다. 진실로 이 말들에 담긴 영혼을 흔드는, 깊고 진한 의미를 말이다.


그래서 요새 자꾸 이 말들이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아빠의 눈빛이 삶을 허투루 살아가는 순간에 나의 가슴 안에서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순간이 나에게도 온다. 삶이 얼마나 짧고 그래서 얼마나 소중한지 진짜로 알게 되는 순간은 나에게 올 것이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나의 내일은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직 살아있는 지금의 순간이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1초 후의 일은 사실 당연하게 오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존'


몇 년 사이에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생각한 단어인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으로 오는 것. 여름에 겨울을 생각하지 않고, 겨울에 봄을 생각하지 않는 것. 여름은 여름답게 온전히 있어주고, 겨울은 겨울의 황량함을 그대로 느껴주는 것. 주어진 순간을 가장 깊이 있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 아무 판단평가도 없이 오롯이 살아 숨 쉬고 느끼는 이 순간의 고귀함을 아는 것. 그 순간을 깊이 있게 음미하고 음미해 현재에 태동하고 있는 이 생명력이 얼마나 귀한 기회인지 아는 것. 많은 책에서 현존을 통해 알려주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었던 걸까.


최근 몸도 마음도 한참을 쌓아온 루틴에서 벗어나 버렸다. 문득 일상이 정돈도 안되고 어지럽다고 느껴진다. 그래서인가 보다. 삶이 짧으니, 내일이 꼭 올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해주듯 아빠의 눈빛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부모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애틋하다. 낳아서 정성으로 돌보고 키워주는데 삶이라는 거울로 더 많은 지혜를 비춰주기까지 한다. 그 삶이 얼마나 훌륭했느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당신의 삶으로 나에게 산다는 것의 소중함을 가르쳐준다. 돌아가시는 순간에 이렇듯 잊고 살던 흔하디 흔한 말들의 의미를 다시 알 수 있도록 가슴속 깊은 곳에 심어주는 것처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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