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질문에 우린 다른 답을 하지

장률 감독의 <풍경>을 보고

by 오렌지필름


장률 감독의 <풍경>은 안개 낀 풍경을 담은 도로, 그리고 이어진 공항에서 누군가가 떠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주인공은 ‘나는 누구이며, 여기에 얼마나 살았으며, 이러한 이유로 떠난다.’라고 다소 경직된 모습으로 답한다. 그리고 음악도 대사도 없이 이어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며 꿈에 대한 이야기를 얹는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 혹은 떠날 때 비슷한 질문을 받지만 아마 모두 다르게 답할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천천히 동일한 질문을 던질 것을 암시하면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주의 다큐멘터리를 기대하고 영화를 봤다가 나는 이영화가 사실주의가 아니라 인상주의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지 그대로의 나열 혹은 편집이 아닌, 감독의 주관이 명확히 담긴 풍경, 그리고 이어지는 경직된 사람들의 인터뷰의 반복에서 의도된 풍경을 담은 느낌을 받았다. 질문을 던지는 주체로 대변되는 카메라는 물음에 답할 주인공을 기다리며 풍경을 담는다. 그러다 주인공이 나타나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하는 주인공들의 꿈의 서사를 실제로 보여주기도 하고 전혀 다른 풍경을 담기도 한다. 영화에서 총 14번의 질문을 던지는데 초반부에 답하는 주인공들은 질문에 또렷하고 명확하게 답하기보다는 살아간다. 처음 질문을 받은 주인공과는 달리 지금-여기-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내가 누구인지에 답하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듯이 카메라는 그들의 삶을 더 많이, 천천히, 담아간다. 누군가의 결혼식, 함께 모여서 밥을 먹으며 아이를 돌보는 모습, 사진관에서 질문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과 함께 일상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굳이 발견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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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이 질문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많은 질문 중에서 왜 꿈일까? 우리에게 실제 꿈으로 대변되는 것들은 너무 다양하다. 나의 욕망이 그려지는 꿈, 일상이 교차하는 꿈, 보고 싶은 사람이 나오는 꿈 등.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정확하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를 들을 수 있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지금-여기를 살아가지만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당신이 누구이며, 여기에 얼마나 살았으며 보다 사실은 더 궁금하고 앞선 질문에 주인공들은 답한다. 들뜨거나 슬프거나 마음에 여러 번 품어본, 눈에서 계속 그리고 또 그려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꿈을 가진 주인공도 있고,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도 있다. 크고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꿈도 있다.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받지만 모두 다른 대답을 한다. 아주 덤덤하게 꿈의 서사를 이어나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포함한 관객에게 이제 주인공들은 가야 할 곳이 있는 먼 타자가 아니라, 한국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사는 주인공들이 되었다. 꿈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놀랍게도 아주 가까이에 관객에게 주인공들을 사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관객이 이렇게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 그럼 이제 우리 함께 가보자 하고 카메라는 손을 내민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간다. 주인공이 매일 걷고, 느끼는 풍경 속으로 같이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우리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누구인지, 얼마나 지냈는지, 그리고 이어진 꿈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는 같이 걸어가면서 주인공들에 대해서 더 깊이, 더 많은 걸 알아 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시 첫 장면을 떠올려 보자. 공항에서 떠나는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우리는 이제 스스로 주인공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일상에 대해 더 자세히, 많은 질문을 관객이 품기 시작할 때 갑자기 툭 하고 멈춰 버린 기계 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흔들리는 핸드핼드 기법으로 강남역 주변을, 지하차도를 미친 듯이 달린다. 숨소리도 여과 없이 들린다. 그리고는 막혀버린 골목에서 멈추고는 고개를 떨군다.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주체가 갑자기 막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이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떨구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 멈추고, 한 숨을 푹 쉬다가, 내 고향과 같을 하늘을 본다.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하는 우리처럼, 같은 하늘을 보고 있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우리를 보여준다. 담아가다가 부딪혀 버린 카메라의 시선이 영화에서와 다르게 그대로 다가와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안개 낀 풍경을 생각해 보게 됐다. 14명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 눈 앞에 보이지만 불 분명한 안개처럼 이 곳에서 꿈꿨다가 사라지곤 하는 풍경으로 지금-여기를 떠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질문에 우리는 모두 다른 답을 하지만, 같은 풍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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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2013, 96분, 다큐멘터리, HD

감독 : 장률

출연 : 아우구스티노

줄거리 : "한국에서 꾼, 가장 기억나는 꿈은 무엇입니까?"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총 9개국, 14명의 이방인들 곁에 카메라가 잠시 머물러, 그들의 일터와 일상을 둘러싼 공간의 풍경을 담는다.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서울 답십리의 부품상가, 이태원의 이슬람사원, 대림동의 조선족타운, 마장동 축산물시장, 안산의 목재공장, 염색공장 등까지. 그리고 그들에게 던져진 단 하나의 질문. 그들이 담담하게 들려주는 꿈 이야기들은 실제 그들이 속한 삶의 풍경 속에서 자연스레 뒤섞이고, 천천히 겹쳐지며 묘한 감응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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