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의 희로애락

미끄러지는 순간이 아름다운

by 오렌지필름

장윤미 감독의 <공사의 희로애락>은 건물 만드는 일을 해온 노동자인 아버지를 통해 공사와 인생의 희로애락을 질문하는 사적 다큐멘터리이다. 아버지라는 한 인물을 집중해서 담아내는 지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하다. 딸과 아버지가 나누는 사적인 이야기를 관음적으로 보고 있는 관객은 산업화를 몸으로 통과해낸 아버지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간접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열심히)하면 된다.’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주인공이 현재 가진 박탈감은 그 시절을 살지 않은 다수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하게 한다. 노동자의 희로애락을 호명하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마치 주인공이 과거를 돌아보듯, 관객이 살지 않은 역사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은 우리 곁에 있으나 자세히 보지 못했던, 혹은 삶의 구겨진 부분을 조망하고 말 걸기를 시도한다. 그 대화는 사적인 동시에 공적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어우러지는 동시에 세대와 세대 사이를 엮는다. 한 인물을 보는 동시에 세대를 조망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인 감독 자신이 격려와 위로를 건넨다. 이와 같은 시도는 ‘지금-여기’를 사는 관객에게 일방이 아닌, 서로의 입장에서 미끄러지며 대화를 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특별해진다.


감독은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어머니가 공부를 시작한 때를 담은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 할머니의 일상을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담은 <늙은 연꽃>(2016), 그리고 정릉 스카이 아파트의 마지막을 내레이션과 함께 담은 <콘크리트의 불안>(2018)까지 작품마다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었다. 특히 감독은 어머니, 할머니와 같이 가까운 인물을 관객에게 보여주다가 <콘크리트의 불안>에서 무너져 가는 아파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시작된 건축, 공사장에 대한 관심에서 다른 사람들이 호명하지 않은 건설 현장의 노동자를 이야기하기로 정한 후, 감독은 가장 가깝지만 먼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대화가 많이 없었던 아버지인 만큼 이야기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영화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그리는 동시에 일에 대한 아버지의 소신과 경험을 내레이션으로 담으며 시작한다. ‘열심히 일하는 친구를 보면 저 친구 주말에 뭐할까?’ 걱정하는 아버지는 공사(工事)를 하는 노동자인 동시에 공사(公私)가 분명한 사람이다. 영화 중간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잡히는 ‘바르게 살자’와 같은 산업화 시대의 표어의 모범생이기도 한 아버지는 자신이 맡은 일은 효율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회사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화한다. 공사 현장의 일부를 채워나가듯 회사에서도 하나의 부분으로 자신을 인지하는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삶에서 만난 많은 인물이 겹쳐 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전체가 아닌 일부로 살아온 아버지에게 일하면서 기뻤던 순간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의외로 소소하다고 느껴졌다. 거제도의 삼성물산에서 근무할 때 최우수 업체 포상과 동시에 개인적 포상을 받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질문과 대답 사이 혹은 그 너머로 전달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기뻤던 순간이 그것이다. 아버지와 차로 이동하면서 창밖의 건물과 그 시절 건축의 역사를 설명하는 모습에서도 우리는 일을 통해서 아버지가 느낀 보람과 자부심을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현재 아버지가 느꼈을 씁쓸함을 감독은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 담아낸다. 그의 흰머리, 깊게 팬 주름, 작업으로 두꺼워지고 거칠어진 손을 ‘줌-인’ (Zoom-in)하며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위와 같이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감독이 딸로 미끄러지는 순간이다. 특히 아버지는 카메라 앞에서 받은 질문의 답변보다 전화상으로 통화를 할 때 더 솔직하게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아버지는 한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에서 후회와 함께 돌아가신 할머니를 많이 떠올린다. 할머니가 안쓰럽고 불쌍한 것은 자신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는 아버지에게 딸은 ‘인생은 60부터’라며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동시에 딸로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때면 관객이 감정적으로 정화를 할 수 있도록 그때그때 풍경 혹은 동물을 가만히 보여준다. 이와 같은 미끄러진 순간은 오히려 감독 자신이 인물을 쉽게 대상화하거나 연민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의 윤리를 보여줌과 동시에 한 사회의 일원으로 감독 자신의 시선이 서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관객 역시 아버지를 쉽게 연민하지 못한다. 오히려 각자의 위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살아온 노동과 삶의 희로애락을 천천히 마주하며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 역시 아버지와는 다른 감독 자신의 방법으로 음악과 할머니가 살았던 집의 풍경, 할머니의 손 때 묻은 물건을 하나하나 정성껏 바라보며 애도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에서 할머니를 쉽게 불쌍한 인물로 만들지 말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아버지와 관객에게 동시에 효과적으로 전한다.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이야기할 때 과거의 자신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지금-여기’의 아이들을 보여준다. 감독의 시선에 담긴 한 아이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부모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혼자 먼지가 많은 공사현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돌거나, 바쁜 부모님의 관심을 끌려다 실패하고 익숙한 듯 다시 혼자가 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고속버스 안 아이의 멋대로 뻗은 손을 카메라로 담아내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한다. 멀미가 유난히 심했던 그때 말없이 아버지가 자신의 토사물을 닦아주었던 좋았던 기억을 말이다. 이와 같은 장면은 감독이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아이를,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을 어딘가의 아이를 함께 엮어 관객에게 질문하게 한다.


‘지금-여기’에서 출발하는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도 보지 못한 지점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삶이라는 것은 지속적이며 어떤 현상에 대한 해결이나 답도 일차원적으로 나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속적인 삶에서 분절된 시간만큼을 떼고 들여다본 다큐멘터리는 연출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질문으로 남는 것이다. 이때 각자의 반응은 유일하고 개인적 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다큐멘터리가 존재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 <공사의 희로애락>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자주 미끄러지는 아름다운 횡단을 통해 우리에게 그 가치를 전하는 특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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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의 희로애락 (2018)

다큐멘터리, 89분

감독 : 장윤미


평생 건물 만드는 일을 해온 노동자가 있다. 그는 일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었다. 그의 한 세월의 노동, 그리고 한 시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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