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은 통과 못해
펄펄 끓는 국물에 서너 번 접힌 사각 어묵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적, 적군이 나타났다고. 당황할 것 없다. 후루룩 어묵을 빼먹고 빈 꼬치를 활에 꽂아 과녁을 겨냥하면 된다.
나는 팔리지 않아 국물 속에 오래 잠겨 퉁퉁 불은, 조금은 슬픈 어묵을 좋아한다. 식감이라고는 없어 탱글한 어육을 즐기는 이에게 묵은 것으로 취급받는 그것이 나의 취향이다. 부들부들 연해서 유치가 갓 난 아이도, 치아가 시원찮은 노인도 만만하게 먹을 수 있다.
그날 나는 어묵 꼬치 하나를 한 입 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판대 한쪽에 붙박여 있던, 간장 뚝배기가 보이지 않았다. 다진 쪽파, 깨, 참기름이 적당히 배합된 양념장이 담긴 그릇 말이다.
“아주머니. 간장 어디 있어요?”
꼬지에서 반쯤 삐져나와 기댈 곳 없는 어묵이 고개를 툭 꺾었다.
“그거, 그거 뿌리세요.”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연녹색 세라믹 용기 위에 떡볶이를 담던 아주머니가 고갯짓 했다. 아주머니의 고갯짓을 따라갔다. 플라스틱 분무기가 꼿꼿이 서 있었다.
너니, 너야?
“얼마나 개운해. 위생적이고. 다른 사람 먹던 거, 같이 찍어 먹는 게 아무래도 그렇더라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크리스마스트리 속 지팡이나, 지붕 기와에 펼쳐진 책을 찾은 듯, 한번 찾으면 더 이상 안 보일 수 없는, 신문 한 구석 숨은 그림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건 그래. 불특정 다수의 질척한 침이 흥건히 고인 간장에 어묵을 찍어 먹는 게...
몹시 추운 날이었다. 서너 명이 견고한 뒤태를 보이며 가판대 일 열에 전진 배치 됐다.
옆으로 조금만 들어가 주세요,라는 뉘앙스의 ‘잠시만요’를 외치며 파고들었다. 어깨와 어깨 사이의 틈을 믿었다. 마침내 일선에 우뚝 섰다. 떡볶이와 순대, 어묵이 품 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가 떡볶이를 담는 손길에는 고도의 정밀함이 있다.
내려놓을 듯 멈칫, 한 번 더!
누가 봐도 그건 서비스다, 살포시 오른 밀떡 두 개.
나는 더없이 순해진다. 하루 종일 서 있는 아주머니의 팔다리를 염려하고 가게의 번성과 가정의 무탈을 염원했다.
보드라운 어묵을 향해 분무기를 발사했다. 간장이 균일하게 분사됐다. 칙칙, 칙칙칙.
부풀어 오른 어묵의 몸에 양념장이 맺혔다.
옅어진 소스가 에스 자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잘게 다진 쪽파와 청고추, 홍고추가 분무기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과하지 못했다.
멀리 버스가 도착한다. 목젖에 닿을 듯 크게 베어 물고 외쳤다.
어묵 국물 더 마셔도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