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걸음에 내 걸음을 맞출게

비법을 전수받고 싶었다

by 미진

친구는 느리게 걸었다. 갈지자로 걷기도 하고 가끔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내가 슬픔을 말하면, 친구는 걸음을 멈추고 깊이 탄식했고 내가 기쁨을 말하면, 친구는 배를 잡고 길 위에 주저앉았다. 내가 놀라운 소식을 말하면, 어느새 친구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가던 길을 멈출 정도의 이야기는 아닌데…….’

나는 길에 멈춰 선 친구가 진정하고 걷기를 바랐다.

‘걸으면서 이야기할까?’라는 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나는 한 번에 한 발자국밖에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운 인간이었다. 중국 소림사에 있는 축지법의 달인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비법을 전수받고 싶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왜 한 번에 두 걸음은 안 되는 겁니까, 세 걸음도 아닌 겨우 두 걸음인데. 이것이 정녕 신이 만든 질서를 거스르는 인간의 탐욕이란 말입니까.”


친구는 강의가 시작되는데 뛰기는커녕 길가에 핀 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취업을 앞두고 동아리방에서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선후배들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시시한 이야기를 길게 말하고 오래 들었다.

나는 친구와 거리를 두었다.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는 느려졌고, 친구는 빨라졌다. 하염없이 느긋했던 친구는 몸집 큰 SUV 자동차를 거침없이 몰았고, 나는 그 옆자리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쳤다.


“제발, 천천히 좀 가.”


번개돌이가 된 내 친구가 아프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친구는 내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입을 떼려는 순간, 나는 저만치 앞서 걸어가 빨리 오라 재촉했을 것이다.


느리게 걷던 너

타인의 말에 온 마음으로 귀 기울이던 너

꽃보다 더 많이 웃고 비보다 더 많이 울던 너

우리 걷자

네 걸음에 내 걸음을 맞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