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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나목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로의믿음 이리라

by 미진

후루룩 게눈 감추듯 게걸스럽게 읽어댄 책이다. 그녀의 글은 자서전적 모티브에 허구가 더해져 몇 장을 읽다 보면 이내 친숙한 그녀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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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러진 기와지붕과 외로움을 이고 지고 서있는 노란 은행나무, 경아와 화가 옥희도, 무엇보다 이 모든 이야기의 원흉이자 시작점인 6.25 전쟁은 동시다발적으로 글을 촘촘히 조여 온다.


전쟁의 노도가 어서 밀려왔으면 그래서 오늘로부터 내일을 끊어놓고 불쌍한 사람을 잔뜩 만들고 무분별한 유린이 골고루 횡행하라...... 다시는 다시는 그 눈먼 악마를 안 만날 수만 있다면


삶에 대한 어두운 절망, 차라리 전쟁에 휘말려 사라져 버린다면 남은 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 같은 마음과 다시 또 올지 모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철저히 상충된 채 불협화음을 내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옥희도라는 남자의 그늘에 기대고 싶었고 예술에 대한 번뇌로 찌든 회색빛 화가 옥희도는 오색빛을 내며 반짝이는 그녀에게 매혹당하고 있었다.


이치?
사막에서 목마른 자가 신기루나 환각으로 오아시스를 보는 데도 이치가 있을까?


아침 드라마였다면 분노한 본처가 앞에 놓인 주스 잔을 휙 쏟아부었을 대목이었을 거다. 끝끝내 숨길 줄 알았던 그는 순순히 경아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것이 길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모두 불완전했고 방황했지만 결국 자리를 지켰고 선을 이루었다. 그게 진정한 선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편적인 관점에서는 그랬다. 골방 속에 감추어진 옥희도의 그림은 고목이 아니라 실은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 이리라.


한 점 남김없이 떨어져 나간 나뭇잎, 그 나목 앞에 놓인 것은 길고 긴 겨울이다. 나목에게 봄은 멀고도 멀다. 그러나 그 겨울을 지나면 마침내 마침내 봄은 오리라. 소설 속 남자 옥희도는 박완서 작가 생전에 지인이었던 박수근 화백을 모티브로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그녀는 누누이 이 글이 픽션임을 밝힌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죽어가는 고목이 아닌 나목으로의 마무리는 한 줄기 희망을 준다. 전쟁은 끝났고 모든 것이 평상시로 돌아간 듯싶다. 하지만 뼛속 깊이 새겨진 생채기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 자식을 내 가족을 잃은 상실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가 말하는 세월호의 참사와도 어떤 면에서는 닮아있다. 비극은 잊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억 투쟁의 차원이 아닌 것이다. 주인공 경아 어머니, 그 노모의 부연 눈빛, 틀니를 뺀 주름진 입이 더 이상의 설명을 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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