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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Sep 17. 2021

아이유의밤편지를 들으며가을편지를 쓰다.

달콤쌉싸름한 짝사랑


아이유의 노래를 듣는다.


정통을 지향하는 나는 시원한 꿀성대로 찌를 듯 샤우팅 하고, 가사는 분명해서 멀리서도 귀에 콕콕 박히고, 정박에 반복되는 구조와 익숙한 화음으로 구성된 노래를 좋아했다. 귀 기울여야 들리는 읊조리는 듯한 노래에는 "왜 저렇게 성의 없이 노래를 하지, 뭐라는 거야"라는 감상평을 내놓곤 했다. 한마디로 음악을 잘 모르는 음알못이었다.



아들이 들어보라고 카톡으로 보내주는 노래들은 도무지 맞장구치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 녀석이 아이유에 대해 팬심을 발휘하면 그저 시큰둥하게 "예쁘네" 라거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보니까 연기 좋던데"라고 반응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이유의 노래에 흠뻑 빠져있다. 출근길 매일 보는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그늘을 드리운다고 불평했는데 알고 보니 천년의 전설, 은행나무였고, 책상 위 연필꽂이는 청화백자였다. 웃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 김춘수의 <꽃>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불러주기 전과 후는 이렇듯 달랐다. 그랬다.



가을의 문턱, 오랜만에 만나는 옛 친구처럼 조금은 낯선 가을, 아이유의 <밤 편지>를 살짝 감상해본다. 



        밤 편지

                                    아이유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또 그리워 더 그리워

나의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



설마 이토록 떨리고 살랑거리는 마음이 썰렁한 내게도 있었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이불킥을 해야하는 그런 추억 하나가 숨겨져 있다. 




중학교 3학년, 새 학년이 되어 전근 오신 선생님들에 대한 소개가 있는 날이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인 월요 조회였다. 그중 눈에 띄게 반짝반짝 빛나던 한 사람, '총각이라고 총각이어야 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게 한 선생님이 계셨다. 단정한 외모에 문학의 향기가 운동장 한가운데 서있는 내게도 전해졌다. 분명 국어 선생님일 거야.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만찢남은 아니더라도 소설책을 찢고 나온 남자 소찢남은 되었다.



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ooo 선생님 내가 찜했다." 그동안 남자 보기를 돌같이 했던 나를 보고 친구들은 의아했다. "너 취향 특이하다. 그 선생님이 좋아. 차라리 수돌이 수학선생님이 낫지. 나이도 많아 보이시던데." 나는 친구들의 안목 없음과 낮은 수준을 통탄했다. "너희들이 뭘 알겠니." 



그 후 나는 나의 남자, ooo 선생님이 맡으신 문학반에 들어갔고 도서관의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온갖 예시문들이 나오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언제 선생님이 말을 걸지 알 수 없다. 나는 선생님과 대화가 되는 문하생이 되고 싶었다. 책 한 줄 읽지 않던 내가 선생님 때문에 문학반에 어슬렁거린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 eliottreyna, 출처 Unsplash


도서대출증을 꽉 채우며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 감동을 받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한건 아니었다. 그저 부끄럽지 않은 문학반 학생이 되기 위해 그리고 선생님이 내주시는 과제에 터무니없는 글을 써내지 않기 위한 구멍 메우기 식 독서였다. 흥부네 아이들이 입던 옷처럼 독서 이력은 누덕누덕했다.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나의 부족함을 알면 선생님이 실망할 까 봐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문학반 수업을 기다리며 때로는 벅차게 때로는 부담스럽게 책을 읽고 선생님이 표현했던 감정을 나 또한 느껴 보려고 애썼다. 모래 위에 글씨가 파도에 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봐 마음을 졸였다.



안타깝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었다. 곧 졸업이니까. 야속하게 그 뜨거웠던 시간은 끝났다. 책과 나, 나와 선생님의 연대 속, 그 속에 끼인 나는 재크와 콩나무에 나오는 콩처럼 몸과 마음이 쑥쑥 자랐다.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마디가 생기고 자라는 생장의 감흥을 느꼈다.



추운 겨울, 빛나는 졸업장과 졸업 앨범을 받았다. 내 얼굴보다 선생님 얼굴을 먼저 확인했다. 충격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 얼굴이 아니었다. 사진이 잘못 나왔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교장, 교감, 아니 교무주임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주름이 있으셨나. 난 본 적이 없는데.' 사진 속  눈가에 주름이 오선지를 그렸다. '내 눈에는 갓 국문학과를 졸업한 문학청년이었고 갓 등단한 소설가의 말간 얼굴이었는데.' 



선생님을 처음 본 날, 아이들이 나를 보던 무언의 눈빛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불투명 암막 대형 콩깍지가 내 눈에 씐 거였다. 그때 나라면 선생님의 커다란 왕점도 주근깨도 다 귀여운 보조개로 보였을 거다. 눈가의 자글거리는 주름도 그저 해맑은 미소로 보였으니까.



내가 문학청년이라고 이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중년의 평범한 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를 감성 충만한 젊은 소설가라고 불렀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문학을 사랑하는 청년이 되었다.



결론은 그랬다.

불러주는 것

어떻게 불러주는가가 중요했다.

© leecampbell, 출처 Unsplash


아이유의 밤 편지를 무한 반복해서 들으며, 어느새 그때의 선생님보다 지긋해진 중년의 제자가 사모했던 선생님에게 가을 편지를 보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입니다.

평생을 교직에 계셨으니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던 저를 기억하실 수는 없을 거예요.


모래 위에 쓴 글이 없어질까 사라질까

선생님의 나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스러질까

허둥지둥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읽었던 핫바지 문학소녀였답니다.


버드나무, 문학반

이 두 단어가 가을과 동의어라면 좀 과장일까요?


바람 부는 날 점심시간이면 운동장 주위를 감싼 버드나무 밑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습니다. 로커 김경호, 박완규처럼 미친 듯 머리채를 흔드는 나무 아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키보다 큰 나뭇잎을 잡으러 뛰어다녔죠. 한참을 그렇게 놀다 5교시 시작종이 울리면 머리는 산발이 된 채로 헐레벌떡 교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곤 지쳐서 졸기 일수였고요. 문학반 수업 시간을 빼면 중학교 내내 놀다 졸다 자다 놀다 졸다 잤습니다.


추억이 그립습니다.


과거를 추억하기 좋아하는 남편에게 미래지향적이며 시크한 아내인 척하지만 추억은 여전히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고소함마저 주는 군밤 같습니다. 제게 샛노란 단 군밤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지 이 땅 어디에 계신지 모를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제자 올림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전하며 가을의 길목에 첫발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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