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진 Oct 02. 2021

가을연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외면해야 할 때

"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저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있네."


© fhfpix, 출처 Unsplash


나이만큼의 속도로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의 얼굴에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걷잡을 수 없이 지나가버려 서둘러 손을 뻗어 잡으려 해도 이미 시간의 몸뚱이는 저만치 가버리고 겨우 꼬랑지 끝만 가닿는 안타까움이 있다. 


초등 6년을 생각해 보면 참 지루하고 길었다. 영원히 초등학교의 회색 담벼락 안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크고 높은 장막에 갇혀있었다. 하나의 나라고 제국이었다. 사춘기였던 중학교 3년간 온갖 다른 감정의 요동을 겪어내느라 시간을 보냈고, 고등학교 3년은 부족한 성적을 아쉬워하며 각종 시험을  치르며 보냈다. 졸업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별 차이도 없었다. 이 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으로 제대로 놀지도 공부하지도 못하고 대학 4년을 보냈다. 대충 밀려가는 대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그렇게 세월을 살았다. 


맞다. 시간은 오랜 예열을 거치며 서서히 알게 모르게 속도를 높여간다. 딱 달라붙어 꼼짝도 않던 시간은 움직이고 있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보통의 속도를 지나 점차 빨라진다. 안전벨트를 꽉 매도 달리는 시간의 움직임이 몸으로 느껴진다.  시간의 속도는 변함없이 가파른 우상향을 보여주고 있다.


"줄여, 속도 좀 낮춰."라고 말할 수 없다.

이건 자연의 법칙이어서 비를 멈출 수 없고 눈을 더 뿌리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순응해야 한다. 

봄이 오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오는 것이 순리니까 믿고 기다리듯 우리는 그때를 인정하고 기다린다.

시간은 분명 어제보다 빨리 오늘을 달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빨리 달릴 것이다. 


두 아들 수험생 엄마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내며 이 시기가 끝나면 아무것도 절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굴곡에서 가장 깊은 만을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시기, "다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던 시기가 지났다. 앞으로의 삶은 까짓 괜찮을 거라고, 안 괜찮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맞았다. 장수 수험생 엄마가 맞은 백신의 약효는 줄곧 유효했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 kh_led7, 출처 Unsplash


"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그랬다. 점선이  다른 점에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간신히 점을 잇고 숨 고르기를 하고 굽었던 허리를 펴고 밀린 땀을 닦고 있으면 떡하니 점 하나가 또 반짝거리며 쉴 틈이 어딨냐고 줄을 이으라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매번 끝과 시작을 번갈아 하며 점 잇기를 계속한다. 

더 이상 이을 점이 없을 때까지, 그 선이 툭하고 끊어질 때까지 


"가려무나, 가려무나

모든 순간에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맞다. 모든 순간은 이유가 있었다.


자식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 자식이 험한 길을 가야 한다면 새벽녘 몰래 일어나 그 길을 평탄하게 다지고 싶고 장애물을 치우고 싶고 환한 가로등을 달아놓고 싶다. 꽃길은 안되더라고 최소한 넘어지지는 않기를 바라며 그리 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그러나


다 때가 있다.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해야 할 때

부모의 존재를 드러내지 말아야 할 때

보여도 보지 말고 알아도 몰라야 할 때

외면이라는 걸 해야 할 때가 있다.

스스로 자생하기를 기다리며 

딴 곳을 바라보고 딴짓에 몰두해야 하는 시기가 부모에게는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정량이 있나 보다. 넘쳐도 안되고 부족해도 안되고 적정선을 잘 지켜야 한다. 그게  또 다른 인격체에 대한 예의이다. 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게 경험으로 얻은 작은 지혜다. 아이들은 믿음으로 자란다. 이제 그 관심을 내게 쏟으려 애쓴다. 나만 잘하면 된다. 


국민 할매라는 애칭이 짠한 김태원의 작사, 작곡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는 최근에 알게 된 곡이다.

곱다. 참 곱다. 김태원 님의 마음도 그의 잘 빗겨진 검은 머릿결처럼 고우실 것 같다.


2011년 TV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52세 이상으로 연령대가 높은 어르신들로 구성되었다. 한창 바쁘게 육아 중이어서 노래에 대한 기억에 없는 걸까, 아니면 노래의 깊이를  느끼기에는 미성숙했던 걸까


중학교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본 미소년들로 구성된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의 노래가 떠올랐다. 물론 두 합창단이 전하는 감동은 다르다.


그 당시 비슷한 또래였던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의 공연이 맑고 신성한 천상의 소리를 선물했다면 정동하, 이태권, 손진영, 백청강이 노래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는 맑으면서 깊었고 지상의 슬픔과 애잔함, 처연함으로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4명의 가수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화음과 삶의 여정을 담담히 전해주고 있는 노랫말에 마음이 한없이 촉촉해진다.  


가을이다.


윤기를 반들거리며 청년의 몸을 자랑하던 거리의 나무가 가뭄에 갈라진 논처럼 바짝 말라 바삭거린다. 풍요로운 여름의 허물을 벗고 있다. 하늘을 받들던 창창한 나뭇잎들도 움츠러들고 뿌옇게 탈색되어 초라하다. 한참을 지나면 가지만 앙상하게 뻗쳐있겠지. 


여름처럼 풍요로운 순간이, 절정의 순간이 있었나 싶은데 봄에서 가을로 곧바로 온 것 같은데 도난당한 것만 같은 그때가 내게도 분명 있었으리라. 소중해서 너무나 소중해서 짧게만 느껴졌나 보다.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작가의 이전글 아이유의밤편지를 들으며가을편지를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