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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Oct 24. 2021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가을 여행


미국에서의 생활은 매일이 스파르타였다.


나의 거침없는 직진은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진정 나였나 싶기도 하고 무언가에 대한 화풀이 같기도 하다. 앞뒤 좌우 보지 않고 덤볐고 치열했다. 그것은 작용과 반작용, 저항과 순응 등과 비슷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열악했고 그 환경을 넘어 존재할 것으로 믿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처절했다. 



남편이 만나기로 했던 교수는 돌연 장기 해외여행으로 부재중이었다. 바둑 기사 이창호처럼 돌다리를 두들기고 그러고도 장고를 거듭하며 건너지 못하는 심사숙고형에 온갖 변수를 고려하는 완벽주의자 남편은 낯선 땅 미국에서 건강하지 않은 두 어린것과 속없는 부인을 데리고 걱정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부 하고 나서 갖게 될 job에 대한 불안과 위태로운 경제 상황 등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웠고 언어의 부자유함과 맨땅의 차가움을 몸소 겪어내야 했다. 



둘째는 분리불안으로 엄마의 껌딱지가 되어 발목을 붙잡았다. 이건 아니지, 엄마 공부하고 싶단 말이야. 이런 혼돈의 상황은 나를 더 용감하게 만들었다. 이전의 어떤 글에 관련 내용, 말하자면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돈 없이 어떻게 영어를 배웠는지, 가난한 자의 생존 과정이 얼마나 짜고 매운지에 대한 좌충우돌 이야기를 썼었던 것 같다.



가능한 모든 외국 교회와 학교를 순회하며 공부를 했고 각종 커뮤니티 모임에 참여했다. 지금도 소심 병이 도질 때면 발작에 가까웠던 나의 과거 무모했던 도전을 떠올린다. 빨간 포장의 타이레놀처럼 제법 약효가 있다. 느슨해지는 마음이 다시금 조여진다.



© chrishardyphotography, 출처 Unsplash


잦아들던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가을 한 모임에서의 여행 이야기를 추억해보려고 한다. 한국 사람은 나 혼자였다. 중국인이 있었던 것 같고 그 외 자세한 기억은 없다. 아무도 가지 않는 카약 트립이었다. 그 지역명이 생각나지 않아 많이 아쉽다. 기록의 힘을 그때는 왜 몰랐던가. 사진으로도 간직한 것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같이 간 한국인이 없어 서로 주고받은 사진 한 장 없나 보다. 



카약 트립 공고를 보고 가겠다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집까지 라이드를 해줄 것을 당당히 요청했다. 남편이 차로 나와 아이들을 학교에 라이드 해주면 큰 아이는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했다. 둘째 아들은 남편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데리고 와야 했다. 내게는 트립을 위한 집합 장소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주최 측은 나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윤기 나는 백발의 인상 좋으신 할아버지 한분이 나를 친절하게 라이드 해주었다.  ]



그 전날까지도 고민의 연속이었다.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걸린다는 매직에서 아직 풀려나지 않은  상황인데 처음 타는 카약을 내가 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친구들은 나를 놀려댔다. 가지 말라고, 그러다 실수하면 어떡하냐고, 제발 주책은 그만 떨라며 자중할 것을 바랐다.  그들이 뭐라고 충고했는지는 여기에 자세히 쓸 수는 없다. 부끄러우니까.


© vrolanas, 출처 Pixabay


꽤 이른 아침 집합장소에 모여 버스를 타고 계곡 입구에 도착했고 내 몸에 맞는 구명조끼를 입고 카약을 골라 탔다. 남은 것은 마지막 집합장소인 하구에 모여 점심을 먹고 해산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카약을 탔다. 그런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팸플릿을 심하게 대충 훑어봤나 보다. 강원도 홍천에서 봤었던 레저 스포츠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려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긴 레이스였다. 그렇게 긴 여정인지를 전혀 몰랐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달은 것은 벨리 어귀에서 카약을 타고 최종 목적지에 내렸을 때였다. 그때는 이미 4시간이 흐른 뒤였다. 



조지아주 어디에서 카약을 타고 끝없이 무한히 내려갔다. 격렬한 물살이 있거나 벼랑 같은 폭포수를 익스트림 스포츠 하듯 낙하하고 가로지르는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물살은 보통보다 심하게 넘실댔다. 줄곧 작고 가는 비명이 내 목에서 새어 나왔다. 가끔 거친 구간을 지나면 위의 사진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운 계곡도 지났다. 하지만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앞에 큰 바위가 나타나면 돌아갔고 가능한 한 부딪힘이 덜한 완만한 곳으로 우회해야 했다. 내 몸의 컨디션이 좋았다면 당연히 더 거친 루트를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최대한 몸을 사려야 했다.



느리더라도, 꼴찌로 도착하더라도 안전하게 가야 했다.  4시간에 걸친 긴 카약 트립을 마치고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집중력", 집중하는 힘의 위력이다.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라는 말에 참나 호랑이 굴에서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거냐 하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고, 과장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는데 집중하고 몰두하는 힘은 예상 밖으로 대단했다. 초, 중, 고등학교 내내 운동신경이 나보다 저질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내가 물속에 빠지지 않겠다는 절박함 하나로 노를 꽉 쥐고 좌우 균형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갈 길의 안전도를 확인하고 방향을 서서히 틀어 최대한 물보라를 피하며 그렇게 나아갔다.  



시간의 흐름 따위는 자각할 수 없었다. 순간처럼 짧았다. 어느새 시간은 저 혼자 흘러간 거였다. 마지막 피니시 라인을 보고서야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 퍼센트의 집중력이 0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다. 꼭 쥔 노를 내려놓는 순간, 구부러진 펴지지 않았다. 그날 잠을 자고 일어나니 열 손가락은 퉁퉁 불은 오징어가 되었고 손목은 파스를 덕지덕지 붙여야 했다. 그리고 며칠간 끙끙 앓아누웠다.



무모한 내게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지금도 할까 말까 고민할 때면 


하자로 결말을 맺는다.


까짓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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