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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Nov 30. 2018

자존감을 만드는 방법

우울, 불안을 이겨낼 면역력은 자존감에 있다



 어떤 사람이 동창회에 갔어요. 동창회에는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친구들만 나왔죠. 원래 금수저라 건물을 몇 채씩 상속받은 친구들, 사업에 성공해서 신문에도 나오고 연소득이 어마어마한 친구들, 그 와중에 의사나 변호사같은 고소득 전문직들이 별로 못 번다고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 그런 동창회였죠.


 그런데 그 동창회에 간 '나'는 흙수저에 우울증 기간이 길어서 제대로 사회생활도 하지 못하고 직업도 좋지 않은, 모은 돈도 거의 없는 사람이에요. 나같은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건 공기나 음식 등 자원의 낭비처럼 여겨지는 동창회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이 '나'를 보며 '쟤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더니 저렇게 폐인이 됐어? 여긴 도대체 왜 나온거야? 돈도 없고 직장도 어디 쓰레기같은데 다니는 주제에.'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내내 온몸이 따끔따금하게 창피했고 차라리 얼음처럼 녹아서 바닥 카펫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동창회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너무 초라하고 서글프고 눈물이 났어요.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싶고… 죽고 싶었죠. 죽어서 이 고통을 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분이었죠.  


 그런데 그때 카톡이 왔어요.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였죠. '야, 게임 안 들어오고 뭐해? 쟁 붙었는데 밀리고 있어. 빨리 들어와! 너 빠지면 화력 부족하다고. 젠장.' 그 순간 초라함은 싹 사라지고 '나'는 갑자기 전의와 책임감과 상대편에 대한 분노에 불타서 게임에 접속해요. 그리고 열심히 한바탕 쟁을 하고 이긴 다음 게임 친구들과 희희낙락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동창회를 가느라 밀린 퀘스트들을 하죠. 어느새 동창회와 동창회의 잘나가는 친구들때문에 무한 초라해진 '나'는 잊혀졌어요. '나'한테는 정말 즐거운 게임이 있고 게임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거든요. 게임 속에서 충분히 바빠 죽겠는데 동창회 따위를 신경쓸 시간이 어디있겠어요?




 사실 이런 동창회는 현실의 동창회가 아니라 우울, 불안 환자들의 머릿속에서 10분에 한번씩 벌어지는 발작의 향연이죠. 우울, 불안 상태일 때는 꼭 아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 인스타까지 들어가서 머릿속에서 이런 동창회를 열어버려요. 그건 한편으로는 우울증 환자 본인의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병 자체가 가져오는 그냥 발작과 같은 증상이기도 해요.


 무슨 코믹한 이야기같지만, 저는 이게 '자존감'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진심으로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것. 이게 바로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존감을 키우려면, 내가 진심으로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내 인생에 있어야 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겠죠.   


 내가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게 즐거워지죠. 사는게 즐겁고 행복하면 자존감이 생겨요. 왜냐면 내가 지금 즐거워서 살아야겠는데 남의 눈, 남의 기준에 맞출 여유도, 이유도 없어지거든요. 내가 지금 재미있게 할 일이 있어서 살아야겠는데 사회에서 혹은 잘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너는 인생의 실패자야. 너는 학력도, 직업도 변변찮은 쓰레기야. 너같은 애가 왜 살아? 니가 먹는 밥이 아깝다.'라고 비난한들 그게 '나'한테 의미가 있을까요? 즐겁고 행복한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겠죠. '꺼지세요. 내 일에 니들이 무슨 상관이신가요? 돈이나 주고 말하면 또 모르겠네요. 내가 인생 쓰레기든 뭐든 니들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그만 내 인생에서 꺼져주세요. 님들하고 놀 시간이 없어요.'

 

 이게 자존감 아닐까요? 내가 세운 내 기준에 따라, 행복하고 즐겁게 내 마음대로 사는거요. 개썅마이웨이. 나를 필요로하는 내 가족들, 내 친구들과 우리끼리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 저는 그게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요.



     

 우울증 환자들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자존감'이죠. 우울증을 앓다보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땅바닥에 뒹구는걸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그런 자존감을 매번 줍고 다니려니 우울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고… 우울증이 나으려면 자존감을 키워야 된다는데 이 쌀알 한톨만큼의 존재감도 없는 자존감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방법은 모르겠고.  


 저도 자존감에 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존감이 떨어지다보니 거울로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싫고, 내 얼굴과 몸이 이따위니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싶고, 누군가 아는 사람이 시험에 합격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결혼을 했다는 말이라도 듣는 날이면 그게 망치처럼 머리를 때려 아프게 만들고, 좋아하는 친구가 성공하고 행복한 걸 배아파할수밖에 없는 초라한 내가 더 혐오스럽고, 이렇게 쓰레기보다 못한 인간이면서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것 자체도 역겹고, 내 성격도 타고나길 아싸에 너무 나쁘고 음침하고 우울하고, 친구들이 좋아할만한 화제나 농담도 하나도 몰라서 어버버하고, 부모님한테는 짐덩이만 되는 것 같고… 이런게 자존감이 없는 사람의 머릿속 생각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우울증이 안 생길 수 없고 나을 수도 없겠죠.

 

 그래서 자존감에 대한 책들을 찾아봤는데… 전 솔직히 실망했어요. 자존감을 키우려면 '성취'가 중요하다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매일 제때 밥 먹기, 매일 운동하기, 매일 사소한 것 뭐 하나씩 하기… 그러고나서 성공하면 자기를 듬뿍 칭찬해주고. 그러면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내용이 많았어요.  


(덧붙여서 자존감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받았는지에 의해 굉장히 많이 영향받는다고도 하더라고요. 그게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면 평생 자존감이 없는 건가요? 부모님을 아주 어릴 때 여의고 자란 사람은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나요? 무슨 운명론도 아니고… 전 이런 말도 싫더라고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데 부모라는 '타인'이 사랑을 해주고 말고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읭…? 그러면 진짜 자존감이 올라가나요? 친구들은 그것보다 훨씬 힘든 노력을 해서 각종 전문직 시험에 붙고 대기업에 합격하고 그러고도 자기계발하겠다고 대학원도 가고 다른 자격증도 도전하고, 자기만의 아이템을 잡아서 창업하고 어느새 성공해서 연 매출 얼마라더라 하면서 신문에도 나오고 책도 쓰고… 이러는데 나는 유치원생처럼 제때 밥 먹고 운동하고 사소한 거 하나씩 해서 '성취'를 이루면 엄청 기쁘고 자존감이 올라가게 되나요? (이 자체가 틀린 건 아닌데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그런 책을 쓴 사람들이 실제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그런 방식대로 자존감을 올려서 성공한 경험이 진짜 있는건지 궁금해요. 무엇보다도 우울증 환자라는 건 '성취' 자체가 어려운 상태잖아요. 매일 제때 밥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수 있고 매일 공부를 5분씩이라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어요. 성취 자체가 어려운 상태의 사람들에게 성취해서 자존감을 올리라는 건 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어쩌면 그 자존감에 관한 책들은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자존감이라는건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장애가 있든, 얼마나 못생겼든, 얼마나 뚱뚱하든, 얼마나 무능하든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성취를 해야만 자존감이 생긴다면 그게 자존감이 맞나요? 성취할 능력도, 의지도, 힘도 없는 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나요? 전 그것도 의문이에요.



 그렇게 자존감에 관한 책들을 덮고 한동안은 아예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어요. 그냥 불안함이나 우울감을 느낄 겨를이 없을 때까지 걷고 아무 행사나 찾아다니며 뭐든 마음붙일만한 것을 찾고 사람들을 만나러 무작정 다녔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지나가다 꽃을 봤어요.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꽃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어요. 이 꽃처럼, 살아있는게 행복했어요.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청량한 공기를 폐 한가득 호흡하며, 제가 좋아하는 모래, 흙냄새가 나는 이 땅 위에 발 딛고 서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죠. 살고 싶었어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게 자존감이구나.' 

 내가 살아있을 가치는 내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듣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는 일을 할 기회를 갖는데 있는거지 다른 데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저는 그동안 제가 간절히 바랐던 일이나 목표나 집착하고 있었던 다른 모든 것들을 다 버려도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돈이 없어도 좋고 남들이 무시하는 직업을 가져도 좋고 뭐든 상관없었어요.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살아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어요.


 그때 느꼈던 자존감은 점점 강해져갔어요. 성북의료사협에서 소모임을 이어가고 지역주민들의 소모임에 참여하는 등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갈수록 더 강해졌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물론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도 저는 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당당하게 살아가긴 하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의 역할은 그 자존감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긴 해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냐? 당신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아무것도 할 능력도 없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내 부모를 포함해서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고 반문하실 분도 아마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요. 다른 사람을 보고 한번 웃어줄 수만 있으면, 한마디라도 말 걸어줄 수 있으면, 손을 잡고 있어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돼요. 어떻게 확신하냐면 제가 그런 사소한 것들로도 엄청난 도움을 받으니까요. 


 제가 지금 한다는 사회적인 역할은 사실 대부분 봉사에요. 봉사가 아니라면 이쪽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것도 아닌 저에게 돈을 줘가면서 일을 시킬 이유도 별로 없죠. 그런데 돈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들어요. 왜냐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 그 자체가 저한테는 심리상담이고 심리치료이고 항우울제와 같거든요. 여러분과 만난다면, 그 자체가 저한테 도움이 되고 우울증약을 먹는 것과 같은 일일 거에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치유모임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저도 치유받고 모이는 사람들도 서로를 통해 치유받는 그런 모임요. 가끔이라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마음건강을 챙겨주고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모임같은 것. 그러려면 많이 배우기도 해야겠죠. 일단 성북의료사협에서 건강생태계 사업으로 운영하는 소모임들에 참여하면서 공부하고 몇년 후에는 우울증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모임도 해보고 싶어요.  


 자존감때문에 힘드신 분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회적 역할을 늘려가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봉사활동도 좋고,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봉사활동같은 것도 좋아요. 구청 홈페이지를 한번 방문해보세요. 그러면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인재풀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되는 각종 교육들이 있어요. 협동조합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교육이라든지 놀이 큐레이터 교육이라든지 걷기 지도사 교육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여러가지 강의들이 있어요. 조금 뜬구름 잡는 것 같고 관심없더라도 시간 되시면 참여해서 네트워킹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러다보면 지역사회에서 봉사든 직업이든 할 일이 생기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자존감도 올라가요. 특히 지역사회 봉사가 좋은 건 걸어서 30분 거리 안에 지인이 생기고 시장 맛집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다는 거에요. 


 젊은 분들은 이런데 참여하는걸 어려워하는게 아무래도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어머니나 할머니 연배의 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런데 우울증 환자는 오히려 또래를 만나는게 좋지 않을수도 있어요. 경쟁상대인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을 만나는건 도움이 안 될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서로 비교하게 되거든요. 외모든 학벌이든 직업이든 경제적 형편이든 뭐든. 그런데 어머니나 할머니 연배의 분들과는 그런 불편함이 없어요. 그리고 제 경험상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 모임이 훨씬 편한 것 같아요. 최소한 저보다 20년은 더 살고 결혼생활하고 자식 키우면서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은 분들이다보니 우울증을 경험한 적은 없더라도 마음이 아픈 상태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를 대부분 잘 알고 계세요. 그리고 그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젊은 사람들의 밑천 짧은 우울증이란... 별거 아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미 너무 늙은 것 같다고, 너무 뒤쳐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힘들었는데 그런 모임에 나가면 아직 어리니, 젊은 나이니 하시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해요. 인생을 보는 관점이 조금 더 길어지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가지 취미생활을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말을 들었어요. '어릴 때 시작해서 좋겠다.' 생각해보니 제가 자수를 앞으로 20년간 꾸준히 한다면 그때쯤에는 꽤 잘하고 사람들도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되겠죠? 그런데 20년 후면 저는 아직 50대밖에 안되고 인생 이모작을 생각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죠. 50대도 늦은게 아닌데 30대가 늦은게 뭐가 있겠어요. 아무튼 이렇게 배우게 되는게 많아요.              



 뭔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은데... 요약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자존감'이란 이런 거에요.


(1) 자존감이란?


 내가 살아서 즐겁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2)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지금까지 집착해온 꿈, 이상, 목표를 모두 포기하는 것살고 싶을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찾는 것(취미생활이든 일이든 하다못해 게임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봉사활동이든 지역사회에서의 활동이든 직장에서의 일이든 가정 내에서의 어머니, 아버지, 자식으로서의 역할이든 친구들과의 모임이든).      



 살아서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의욕과 힘을 주고 집착해온 꿈, 이상, 목표를 포기하는 것도 도와줘요.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또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가 자존감의 근원이 되는 행복감을 더욱 크게 키워주고 우울증을 유발하는 생각들을 없애는걸 도와주죠. 


 물론 이건 자존감에 대한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고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어요. 이 글은 자존감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제가 자존감을 만들었던 '제 경험'이라고 할게요.

 

 별건 아니에요. 사실 제가 브런치에서 그동안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중요하다고 했던 것들과 비슷해요. 그리고 막상 실천하는 입장에서는 별게 아닌게 아니라 힘들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기도 하는 방법들이죠.  


 재미있는 걸 어떻게 찾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문제에요. 제가 했던 방법들은 저의 방법들이고 사람마다 환경도 상황도 다르니까요. 그런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를 때에는 진짜 아무거나부터 시작하는게 도움이 돼요.  재미있는 일을 머리로 찾는게 아니라 아무거나 경험해보면서 몸으로 찾는 거죠. 나를 필요로 할 것 같은 사람들을 머리로 생각해보는게 아니라 아무나 만나보면서 몸으로 찾는 거죠. 저도 제 취향이나 성격같은거 생각 안하고 무작정 아무거나 시작해버렸거든요.  


 구청 행사소식에 올라오는 것들 중 참여할 시간이 되는 행사들, 문화센터에서 하는 원데이 클래스, 강좌들 중 할 수 있는 것들, 인터넷 검색하다가 문득 눈에 띈 학원… 취향, 관심 무시하고 랜덤하게 하나만 선택해서 가보세요. 치료 목적으로 약을 먹는 것처럼 '시간을 때운다'는 생각으로 아무 행사나 참여하는 거죠. 한발을 내딛으면 그 다음부터는 가지치기가 쉬워져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다른 행사들, 강좌들을 소개해주고, 행사들이 사람들, 다른 행사들, 강좌들을 연결해주거든요.    



 글이 너무 중구난방 길어졌네요. 생각해보면 자존감은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자기회복능력, 정신적인 면역력과 같은 것 느낌이에요.  행복감을 통해 자존감을 깨우면, 그 다음에는 자존감이 스스로 잘 알아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 같아요. 자존감이 우리를 괴롭히는 우울한 생각이나 불안감을 막아주고 현재에 집중해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역시 감기에는 약이 아니라 면역력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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