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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08. 2023

우울증과 다이어트

살고 싶어지려면 먹어야 하는데


우울증과 다이어트는 복잡한 주제이다. 다이어트와 우울증은 관계가 깊다. 섭식장애라는게 존재할만큼 체중은 우울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살을 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울증 중에는 안그래도 에너지가 없는데 그 조금 남은 에너지를 먹고 싶은걸 참는데 쓰는건 너무 가혹하고 비효율적이다.


우울증 속에 있을 때는 외모가 우울증의 원인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살을 빼고 성형을 하면 우울증이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본인이 우울증이라는 것 자체도 모른다. 외모, 체중때문에 인생이 힘든 거라고 느낀다.


사실 우울증에 걸리면 자기혐오적인 필터로 스스로를 보기 때문에 자기가 못생기고 뚱뚱해보일 수밖에 없다. 그게 정상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날씬한 사람들이 지방흡입을 하러가고, 내가 보기엔 저 얼굴로 살면 우울증 없어지겠다 싶은 사람이 자기가 못생겼다면서 우는 일들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혹독하게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해서 건강도 찾고 우울증도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나처럼 오랜기간 심한 우울증 상태에 있었던 사람은 그 '운동'이나,그럴만한 '의지력'이 없어서 불기능하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나도 답은 잘 모르겠다. 내가 겪어온 과정을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우울증 기간 중에 체중과 외모는 나를 굉장히 괴롭히는 문제였다. 나는 원래 식탐이 좀 있는 사람이다. 먹는걸 좋아하고, 마음이 불안정할 땐 맛있는걸 먹어줘야 든든해지고 따뜻해지는 성향이다. 우울증이 아무리 심해도 입맛은 잃어본 적이 없다...


은둔형외톨이 때는 체중에 변동이 심했다. 엄청 쪘을 때도 있고 보통일 때도 있었다. 그땐 불안할 땐 새벽에 냉장고에서 땅콩잼, 딸기잼을 퍼먹거나 (누텔라를 모를 때라 다행이다) 한동안은 단팥에 빠져서 단팥빵만 줄기차게 먹거나 팥빙수용 팥 깡통을 따서 먹기도 했다.


대학 입학 초기에는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하루종일 먹을 것만 생각나는 슬픈 시기를 보냈고, 그때가 몸무게가 최저일 때였다.

 

우울증에 관해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과체중 정도인 상태였다. 많이 움직이고 다니다보니 살이 좀 빠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면 우울증이 낫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곧 포기했다.  


우울증일 땐 살아갈 에너지도 부족한데 먹고 싶은 걸 참는데 에너지를 쓸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땐 인생에 다른 낙이 없었기 때문에 맛있는걸 먹는 즐거움도 없으면 인생을 왜 사나 싶었다.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어서 오늘 하루 살고싶어지게 만드는게 중요했다.


그래서 지난 3년 정도는 체중 신경 안쓰고 편하게 살았다. 먹고 싶은게 있으면 다 먹으면서 내 욕구를 존중해줬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허기가 져서 막 먹게 될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자괴감을 느끼기보단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마음을 가졌다.


우울증이 나으면서 자존감이 올라가고 마음이 편해진 것도 한몫을 했다. 자존감은 체중을 받치고 있는 지지대같다. 자존감이 크고 단단해질수록 더 많은 체중을 감당할 수 있었다. 전에는 48키로의 무게에도 부서지던 자존감이 지금은 60키로도 거뜬하게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우울증 필터가 벗겨진 내 눈엔 뚱뚱한 나도 꽤 괜찮아보였다...


그 결과 비만 정도의 몸이 되었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 뱃살이 지방부분만 떡판처럼 네모지게(?) 축 늘어지는걸 볼 수 있었는데 처음엔 병인 줄 알았다. (혹시 복수가 찼다거나... 찼다거나...) 그리고 점점 몸이 여기저기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중성지방이 300을 넘고 여러가지 수치가 안좋아졌다.


살을 빼야지 라는 생각은 했는데 식욕을 참는게 너무 어려웠고 몇번 시도하다 요요가 왔다. 그래서 어차피 집중력도 올릴 겸 해서 ADHD약의 도움을 받았다. 약을 먹으면 식욕이 없어진다. 칼국수도 지우개로 보일 정도이다. 약의 부작용이긴 한데 지금의 나에겐 좀 필요한 효과다.


물론 약에 적응하면 조금씩 식욕이 생기고 약효가 끝나는 저녁 즈음엔 식욕이 폭발하기도 한다. 그래도 초창기에 이렇게 몇달 습관을 잡아놓으면 유지어터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요즘 식사 습관은 아침엔 약간의 밥 또는 삶은 계란 두개를 먹는다. 점심은 팀원들과 같이 먹으니까 맘껏 정량으로 먹는다. 저녁은 삶은 감자 반조각 정도 먹고 야식은 먹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지금 한달만에 4~5키로 정도 빠진 채로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 사놓은 55사이즈 정장, 원피스들도 간신히 입을 수 있게 되고 (자켓이 잠기진 않지만ㅜ)  기분도 좀 좋아지고 몸도 가뿐해진 느낌이다.


목표는 3키로 정도 더 빼는건데 슬슬 운동도 좀 하고 건강과 체중을 둘다 유지할 수 있게 몸 관리를 해야겠다.


여기까진 내 이야기이고, 다이어트에 관해서는 정말 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이 있는지라... 정말 자신한테 맞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진짜 힘들다는건 공감한다. 나도 약 아니었으면 절대 못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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