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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pr 04. 2023

부모의 책임... 제발 병원에 좀 데려가요

가지 못한 길


내 책에 관해서 누군가는 내가 약 없이, 상담 없이 우울증을 치유한 것에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난 그 과정을 쌩으로 견디고 지금 잘 살고 있는 내가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동시에 굳이 그렇게 살아야 했나 라는 생각도 한다.


만일 내 부모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7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수능 공부를 하고 있는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식이 뭔가 이상하다는걸 진작에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내 자식은 취미 생활도 없어, 친구도 안 만나, 공부만 해... 이따위 자랑(?)을 남들한테 늘어놓을 시간에.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고 약도 먹이고 뭔가 치료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그때는 내가 20대 초반이었다. 만일 내가 그때 우울증 약을 먹을 수 있었다면... 상담을 받든 뭘 하든 해서 좀더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친구들을 좀 사귈 수 있었다면... 뭐라도... 취미생활이라도 뭔가 할 수 있었다면... 그럼 내 인생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도 과거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정확하게 17살부터 36살까지, 정말 지옥의 지옥같은 고통을 혼자 겪어야 했다. 그게 진짜 끔찍하고 아팠던 이유는 아무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울증이 37살부터는 나아진다고, 그때부터는 네 인생을 살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누군가 확실하게 보증을 해줬더라면, 나는 좀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발을 뭉개버리는 그 절망감... 나는 평생 이렇게 고통받고 살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실패에 발목이 잡혀 후회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그 절망감은 최소한 없을 테니까.




그런 환자한테 무슨 힘이 있어서 병원을 갈까. 내 몸은 어느 골목에서 어느 차에 치여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데 내가 어떻게 일어나서 걷고 병원에 갈 수 있을까. 당연히 누가 데려가줘야 하는 거 아닐까? 죽어가는 사람이 의식이 흐릿해서 자기 괜찮다고, 집에 가겠다고 해서 정말 집으로 데려가는 구조자들이 있을까? 뭐가 됐든 병원으로 데려가는데... 왜 우울증 환자들은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적을까.


내 아버지는 우울증에 대해 '개소리'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딱 할 말이 없어진다. 본인도 심한 불안장애와 여러가지 정신적 문제들이 있지만 어쨌든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자기 몫을 다 하면서 살아왔고, 형에게 학대받는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인생을 일구었다고 믿고 있다.


그 세대에는 우울증이라는 병, 정신과 같은 것이 제대로 알려져있지 않았다. 약한 단계는 의지력의 문제, 심각한 단계는 수치스럽고 감춰야 할 문제로 생각되었다. 어느 쪽이든 사람에게 심각한 결함(장애)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게 내 자식의 일이라는걸 받아들이는게 참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집 아들이 명문대에 갔다가 적성에 안맞아 우울증을 앓고 자살할 뻔 하고 지금은 폐인처럼 산다는 뒷담화는 걱정 반 고소함 반의 마음으로 쉽게 해도... 그게 내 자식 일이라면 부정부터 하고 보게 되는 것 같다.


'내 자식은 우울증일리 없어, 우울증이라는 병이 대체 뭔데, 의지력의 문제일 뿐이야, 우울증은 없어, 정신과에 가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자로 만들어 약을 팔아먹겠지, 너는 정상이고 지금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기분이 안좋은게 당연해, 약이나 상담치료는 해결책이 될 수 없어, 지금 준비하는 시험에 붙기만 해봐, 우울증 싹 없어진다.'


그렇게 우울증 환자는 치료도 못 받고 방치된다. 부모로서 자식의 '장애'를 인정하는게 마음도 아프고 자기 잘못인 것 같아 죄책감도 들고... 결국 그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애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는게 부모인 당신들의 책임이라고. 당신들은 직무유기를 했다고.


내가 스스로 다친 몸을 질질 끌면서 병원까지 기어가야 했냐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들 잘못이라고.




물론 이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이야기다. 병원에 다니면서 온갖 치료를 받고 여러군데서 상담도 받고 해도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병원이 꼭 유일한 정답은 아닐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좀 많이 간절했다. 병원이 주는 믿음이라도, 플라시보 효과라도... 한 가닥 희망이라도... 제발 누가 날 좀 구해주기를...


우울증이 나은 다음에 가장 죽고싶은 기분이 들 때는 그동안 내 인생이 너무 망쳐진걸 발견하고, 그걸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했을 때였다. '만회'라는 개념은 이미 불가능하고 남은 인생 죽을 수는 없으니 재미도 좀 있으면서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는 직업이란걸 찾고 어떻게든 바닥에서 그럭저럭 살아가야 하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정말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제때 병원 좀 데려가지. 그랬으면 내 인생이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텐데. 나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좀 이해하는 편이다. 아픈 사람이 뭘 어떻게 해...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이라는 내 책은 차에 치인 환자가 아무도 구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살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질질 끌면서 응급실 앞까지 이동한, 그런 이야기다. 그 덕분에 얻은 것도 많다. 그 과정 자체가 내 인생이 됐고 나에게 새로운 삶이 열렸다. 우울한 감정은 이제 스스로 잘 다룰 수 있는 것도 굉장히 큰 무기다.


아, 어쩌면 이것도 내 부모의 빅픽쳐인가... 절벽 위에서 사자 새끼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알아서 살아남은 사자가 더 강해지니까?


그래도 인간적으로 눈앞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병원에는 데려다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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