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은둔형 외톨이를 경험하고 사회 불안이 높아도 마을에서 일하고 살아가는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나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도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쉽지는 않았는데 중학교 때 좀 오랫동안 왕따를 경험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친구 없이 오랜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대학원 때도 우울증, 휴학 등의 이유로 친구가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지금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즈음부터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 이력이 있는지라 나는 사회불안이 굉장히 높고(2020년쯤 병원에서 검사했을 때), 사람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긴장되고 피곤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카톡이나 전화로 대화하는 것도 많이 힘들어서 답장 텀이 최소 일주일일 때도 있었다.
사람을 만났을 때 극도로 어색함, 누구와 만나도 공통의 관심사가 적음, 예의는 잘 지키지만 친화력 부족함, 어떻게 가까워져야 할지 잘 모름, 만났을 땐 친하지만 먼저 연락하거나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못함(핑계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불안감 때문에 못하는거...), 상대방이 대화를 주도해줘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잘 몰라서 식은땀 남, 상대방과 마주보고 있자니 내가 못생겼고 노잼인 사람이라는걸 의식해서 더 위축되고 어색해짐 등등. 이게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의 기본적인 상태인 것 같다.
마을 친구들과 함께 춘천에 놀러가서 먹은 닭갈비
그래서 나도 내가 굉장히 싫다고 느낄 때가 많고, 그동안 포기한 인간관계도 정말 많은데 마을살이는 의외로 할만했고 재미있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가장 큰게 '나이'인 것 같다.
마을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연령대가 높다. 활동의 상당수가 낮시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은 학교, 직장, 육아 등으로 바쁘니까 보통은 50~60대가 주축이 된다. 40대만 해도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한다.
이러다보니 30대인 나는 어딜가나 막내...도 아니고 애기(!)로 분류됐다. 대학을 늦게 가서 어느 집단에서나 나이가 많은걸로 괜히 위축되고 괴로웠던 나에게는 마을이 뜻밖에 해방감을 주는 공간이었다.
마을이라고 해서 직장, 사회와 엄청 다른, 순수하고 아름다운 곳인 것만은 아니고 여기에도 이상한 사람들, 갈등, 경쟁은 어느정도 있다. 하지만 30대가 마을에서 그런 일을 경험할 확률은 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대차이가 확실히 있으니까.
나만해도 또래에 대해서는 내 잣대를 들이대고 이것저것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한참 어린 10대 청소년한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진 않는다. 내 기준에서 무례하게 느껴져도 웬만하면 귀엽게 보이고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 우리랑 문화가 다른가보지~'하는 너그러움이 있다.
마을에서 만나는 '어른'들도 나에 대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마을에서 일하긴 하지만 어른들에게 싹싹하고 살갑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예의는 있지만 관계에서 어색하고, 먼저 다가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아는척 하고 인사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재미도 없고, 술도 잘 안마시고, 개인 시간이나 공간은 단호하게(?) 확보한다. 잘하는건 만났을 때 잘 웃는거, 리액션 나름 열심히 하는거, 잘 들어주는거, 상대방에게 진심이라는거,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참여하는거...?
그런데도 어른들은 너그러웠다. 좀 이상해보일수도 있고 그들 세대의 규범으로는 실수하는게 많았을텐데도 항상 예쁘게 봐주고 감싸주었다.
떡이나 빵 같은 먹을걸 챙겨주시는 분들, 사이즈 미스인 예쁜 옷들을 가져다주시는 분들, 소개팅 시켜주시는 분들, 고기 구워주고 밥에 얹어주시는 분들, 부탁하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고 인맥 동원해서 사람들 모아주시는 분들... 어딜가나 그냥 젊은 사람이 온 것만으로도 좋아해주시고 예뻐해주셨다.
소위 꼰대(?)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못봤다. 내가 우연히 좋은 사람들만 만난 걸수도 있지만 지난 5년간 활동하면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 그랬다.
길가에서 만난 이 작품같은,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호의
나는 세상에 이유없는 호의는 없다고 믿어왔는데, 마을에서 처음으로 순수한 호의도 많다는걸 느꼈다. 별거 안해도 애정을 듬뿍 나눠주는 그분들의 마음이 참 고맙고 나한테도 큰 도움이 됐다. 그런 온기가 쭈그러든 내 마음을 한겹씩 한겹씩 펴주었다. 사실 어떤 때는 내가 부모에게서 받고 싶었던, 꽤 깊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다 갚지 하고 고민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좀 마음 편하게 받는 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보답하고, 그 이상의 것들은 다른 곳에서 갚는다. 마을 안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참여하고 활동하고 봉사한다. 누군가에게 받은만큼 생긴 마음의 여유를 다른 누군가한테 돌려주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마을 공동체가 돌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상호적으로 주고받는걸 넘어서 제3자에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것, 그게 공동체 아닐까.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준건 '어른'들의 마음 씀씀이였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사회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일수록 마을에서 살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또래보다는 어른이 더 편할 수 있다. 어색한게 당연하니까 당황스럽지 않고, 자연히 거리가 유지되니까 관계 맺기에 익숙해질 시간을 얻을 수 있다.
만일 고립 청년들이 다시 사회로 나오기 위한 정책을 만든다면 이런 점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끼리 친해지게 하려는 프로그램보다는, 어느정도 나이 차이가 나면서 청년들을 감싸주고 '예쁘다, 예쁘다' 해줄 어른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좋을수도 있다. 힐링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은 청년도, 나이 많은 사람도 필요로 하는 거니까 그런 프로그램을 매개로 마을에서 청년과 어른들이 함께 어울리고, 그게 또 공동체로도 이어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습도 많이 됐고, 약간이지만 긴장감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예전보단 사회생활을 잘하는 편이다. 그리고 든든함도 생겼다. 내가 어디서 뭘 해도 나를 지지해주는 막강한 지인들이 있으니까 좀더 당당해졌다. 그 마음을 갖고 내일도 출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