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콜라캔

나의 자화상

by 오렌지나무
출처: pixabay


나는 나 자신이 밟혀서 확 찌그러진 콜라캔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조금조금씩 펴나가고 있는 중이다. 인생에서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이미 쏟아진 콜라는 다시 담을 수 없고, 설령 다 편다고 해도 팽팽한 새 콜라캔 같은 그 느낌은 없을 것이다. 구겨졌던 자리는 칠이 벗겨져있고 은색의 삐죽한 면들을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예전의 새 콜라를 생각하면 내 인생은 끝났다. 돌이킬 수 없이 망했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콜라캔이 꼭 미끈하라는 법도 없고 콜라만 담아야 된다는 법도 없다. 우리 어릴 땐 다들 델몬트 오렌지주스 유리병에 보리차를 담아서 먹지 않았던가. 오렌지주스 병에 보리차를 담는다고 뭐라 한 사람? 아무도 없다.


더욱이 나에게는 오직 이 콜라캔 하나뿐이다. 다른 캔은 없다. 나를 갖다버리고 옆집 사람을 데려와 자리에서 대신 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엄청난 진리를 깨달아 '자아는 없으며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옆집 사람이 곧 나고 내가 곧 옆집 사람이다!'라는 경지에 이르기 전까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왕 찌그러진거 찌그러진 대로, 또 찌그러졌다 펴진 대로의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왜 우리가 미술시간에 작품을 망치면 일부러 더 이상하게 해놓고 그게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나도 이 캔이 예술작품이라고 우길 작정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만의 즐거움과 씁쓸함을 담아서 마시는 행위예술가가 될 생각이다.


그리고 나처럼 찌그러진 다른 캔들과 같이 놀이도 하고 싶다. '업사이클 누가누가 잘하나' 놀이같은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보고 만나고 싶다.


인생 좀 망하면 어때, 망하면 망한대로 예술인걸.


우리, 미술관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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