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불안할 때
늦었을 때가 가장 빨랐다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불안할 때가 있다. 사실은 지난 20년간 줄곧 그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수능 재수 때, 삼수 때, 5수 해서 겨우 대학에 들어갔을 때, 대학생활 할 때, 대학원 갈 때, 취직 준비했을 때, 인턴할 때, 시험 준비할 때, 시험 다 망하고 30 중반에 다시 취직 준비할 때, 연애감정이 들 때...
나는 그 모든 시간에 이걸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늦었다고 생각해서 지레 좌절하고 괴로워했다. 항상 남들보다 늦고 뒤쳐져있는걸 만회하는 기분으로 살아야 했다.
뭔가 성취하더라도 새로운걸 얻는 기쁨보다는 절망속에서 인생의 사채를 갚는 기분이었다. "이 나이에 이 정도 이룬건 잘한게 아니라 부끄러운거지. 너보다 훨씬 어린애들도 벌써 이룬건데. 니 또래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고."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도 늦은게 없었고 참 젊고 예쁜 나이였다. 언제나. 그럼에도 그때는 남들보다 1년, 5년, 10년 늦는게 엄청나게 뒤쳐지고 인생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에는 내 우울증의 영향도 강했지만, 뭐든 최연소에 나이 따지기 좋아하는, 몇살엔 뭘 이뤄야 '정상'인지 우리 인생의 계획표를 다 짜놓고 몰아대는 사회의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49세에 담배를 끊었다. 내가 늦었다고, 인생 망했다고 생각하면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어느 때였다. 그런데 지금 아빠는 담배 끊은지 20년이 됐고 의사들과 연구자들의 논문대로라면 금연과 운동을 통해 깨끗한 폐를 다시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아직 팔팔하고 살 날이 꽤 남은 69세다. 아빠 자신도 그 당시에 이제와서 끊어서 뭐하냐고 했는데 전혀 늦지 않은 때였다.
나는 그 20년간 뭘 했을까. 매일 영어 단어 하나씩만 외웠어도 지금쯤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 끈기있게 우울증 투병을 했고 좀더 편안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됐고 우울증도 20년만에 나았으니까 열심히 살아온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지금도 뭔가 늦었고 뒤쳐졌다고 괴로워하는 청소년들, 대학생들, 20~30대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늦지 않았고 당신들은 지금 아주 젊고 뭘 해도 좋아보인다고. 아무거나 다 해보라고.
이런 기분이 들면 보통 젊음을 잃었을 때라고 하던데...
그런데 그건 39세의 나 자신에게 하고싶은 말이기도 하다. 지금이 가장 예쁠 때라고, 늦지 않았고 뭐든 도전해도 된다고. 39세 "다워야" 할 필요는 없다고. 나이 때문에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거 하고 살라고.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빠른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