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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26. 2023

내가 싫어하는 것

만병통치 약장수

내가 너의 우울증을 낫게 해줄게.
내 방법대로 해봐. 우울증 고칠 수 있어.
은둔형외톨이? 이렇게 하면 좋아질 수 있어. 희망을 가져.


나는 이런 약장수들이 싫다. 싫은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 은둔형외톨이인 사람을 낮춰본다. 이들 앞에선 내가 뭔가 문제가 있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둘째, 모두에게 통용되지도 않는 약(방법) 만병통치약이랍시고 팔아서 희망고문을 한다.


우울증이 나은 사람 중에도 많고, 우울증이란걸 겪어본 적 없는 사람 중에도 많다. 우울증을 고쳐본 부류는 이 방식으로 해서 본인이 나았으니까 남들도 같은 방법으로 나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쁜 의도가 아닌건 알지만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울증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우울증에서 낫는 방법을 알고있다. 마치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바보라서 정신과 진료나 운동이나 쬐기를 시도도 안해본 것처럼, 그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우울증에 대해서 이렇게 하면 100% 낫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약도 잘 듣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양쪽의 사례들을 봤다.


그래서 약이 잘 들어서 우울증이 나은 사람들이 "병원 가. 약 먹으면 다 나아. 왜 안가고 있어?"라고 하는 것도 사실 누군가한테는 폭력일 수 있다. 상대방은 이미 10년째 약 복용중인 선배일지도 모른다.


변화해야 하는건 당사자 본인이고 사람이 바뀌는건 정말 힘든 과정이기 때문에 우울증에는 기다림도 필요하다. 상처가 좀 견딜만큼 나아지든 받아들이기 싫은 자기 자신을 애써 받아들이든... 마라톤 후에 멈춰서 숨을 고르듯, 마음을 고를 시간이 있어야 하다.  


병원을 가든, 햇빛을 쬐든, 운동을 하든 그 모든 것들은 엄청난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그걸 해내고 있다면 많이 건강해진거고 잘하고 있는거고 대단한거다.


하지만 그것도 할 수 없어서 못하는 쇠약한 상태의 사람들도 있다. 겉은 멀쩡해보이지만 마음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 우울증에서 낫는 무슨 대단한 방법을 가르치려고 든다는건... 약이 있는데 안 먹는 네가 의지력이 약하다는 비난을 하는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우울증을 병이라고 규정하는건, 우울증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본 거지같고 멍청하고 못생긴 내 모습과 망한 내 인생을 사실이라고 믿지 말라는 의미이지... 우울증 환자는 치료와 도움이 필요한 불쌍하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에 대한 존경은 있지만, 실패하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에 대한 존경은 없다. 때로는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것 같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뭔가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성숙해지고 얻는게 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성공의 노하우가 있는 것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정신적인 성장이 있다. 우열을 따지는게 아니다. 어떤 것이든 뭔가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만큼 얻는게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성공을 겪었든 고통과 절망을 겪었든 경험치가 쌓였고 존경받을 만하다고, 배울게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증도 그냥 단순한 병이 아니라, 기나긴 순례길을 맨발로 걸으며 하나 둘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는 자기성찰의 과정, 혹은 부처의 고행과 그 끝의 깨달음과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불쌍하고 초라해보이는 은둔형외톨이 청년의 내면에도 배울 것들이 있다.


어둠 밖으로 나오는 방법을 다짜고짜 가르치려고 들게 아니라, 너는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했냐고 물으면서 배울만한 것을 먼저 찾아야 하는거 아닐까. 도움은 필요하지만 불쌍하지는 않다. 초라해보이지만 나약하진 않다. 자비는 고맙지만 동정은 상처가 된다.


은둔형외톨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이런 시선 때문에 더 위축되고 상처받는 사람들도 많다. 도움을 주려는 그 손길은 고맙지만, 이런 부분들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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