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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ug 30. 2023

개인적 취약성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용백 <기화되는 것들> 중 한 장면


어느 한 개인의 우울증, 자살이 사회에서 문제가 될 때, 가끔 듣게되는 말이다.


개인적 취약성.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들'에겐 별 문제는 아니었고, 개인이 정신적으로 건강했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텐데, 개인의 취약한 면으로 인해 우울이나 자살에 이르렀다는 논리이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기계적 노동자를 원하는지, 얼마나 사람의 개성에 무관심한지를 느낀다.


개성은 사람마다 다른 특성이다. 좋은 점만 개성이 아니라 남과 다르게 약한 부분도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새우에 알러지가 있는 것도 그 사람의 특징이다. 나는 굴을 싫어해서 절대 안 먹는데 (여러번 시도는 해봤는데 생굴, 굴전, 굴튀김 모두 실패했다) 그것도 내 특징이다.


사람 자체가 가치의 중심에 있고 존중받는 사회에서라면, 각자의 좋고 싫음, 잘하고 못함, 강하고 약함이 대체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개성을 다 수용할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수용하려는 노력은 해봐야 한다.


급식 메뉴에 새우튀김, 굴전이 들어가더라도 그걸 안먹을 자유는 있어야 하고,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도 있어야 한다. 안먹는다고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하거나 손가락질하는건 오히려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일이다.


개인적 취약성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취약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약한 부분, 강한 부분이 합쳐져서 각자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된다. 그 각각을 존중하고 그 개성을 가진 채로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게 사회의 역할 아닐까.


사람들을 다루기 쉽게 평균에 수렴하도록 요구하고, 평균에서 모자란걸 문제 취급하고 넘치는걸 잘라내는게 아니라.


그래서 난 개인적 취약성이란 말은 안썼으면 좋겠다. 정상과 부족함을 구분하는 기준 자체도 객관적으로 정해질 수 있는게 아닌데, 과연 누가 누구를, 어떤 면에서 얼마나 취약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개인과 개인, 그리고 사회가 맞닿아있는 일에서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로 넘겨버리는건 얼핏 간단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결국 또 다른 (취약한) 개인에게로 폭탄을 돌리는 일일 뿐이다.


사람이 우울해할만한, 자살을 할만한 어떤 일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출발하는게 맞다.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다음에 또 일어나는걸 막으려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를 찾는게 사회, 그리고 우리의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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