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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ug 30. 2023

시를 찾다


얼마전에, 잃어버렸다는 그 시를 찾았다. 조조의 아들로 유명한, 진사왕 조식의 '우차편'이라는 시였다.



아, 굴러다니는 다북쑥이여,
세상살이 어찌 너만 홀로 그러한가?
오랫동안 뿌리를 떠나 돌아다니느라
밤에도 쉴 이 없구나.
동서로 일곱 밭을 지나고
남북으로 아홉 논두렁을 넘었네.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
나를 구름사이로 들어올리네.
하늘 끝까지 날려가나 싶더니
홀연히 깊은 샘으로 던져지네.
거센 바람이 나를 끌어내어
저 밭 한가운데로 되돌려놓네.
남쪽을 향하는가 했더니 다시 북쪽으로 가고
동쪽이라 하더니 도리어 서쪽으로 가네.
넓고 넓으니 어디에 의지해야 할까.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네.
회오리 바람에 여덟 못을 지나고
펄럭거리며 오산을 돌아다녔네.
굴러다니며 일정한 거처가 없으니
나의 이 괴로움을 그 누가 알려나.
원컨대 차리리 숲 속의 풀이 되어
가을 들불에 휩쓸려 타버렸으면.
타버리는 것이 어찌 아프지 않겠냐만
줄기와 뿌리가 하나되기를 바라서라네.



해석은 조금 틀릴 수도 있다. 깊은 우울증 속에 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담아낸 시여서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지금은 특별한 일은 없지만 이 시를 읽으면 옛날 감정들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저릿하다.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기억들이 덮여 희미해져도, 희안하게도 몸은, 그리고 마음은 그때 그 순간들을 입고 서있다. 벗을 수 없는 옷처럼 나는 그 아팠던 날들을 생생하게 몸에 걸치고 있다. 봄바람에도, 시 한편에도 아픔이 묻어있다.


구름이 진주알같은 비를 뿌리고 가듯 이 시는 내 마음에 알알이 흩어져 있었다. 내가 그렇게 외로웠구나, 세상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렸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빗속에 노을이 지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시집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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