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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Sep 14. 2023

쓸모없는 인간이라 자살한다는 이야기


유입 키워드 중에 이런 것이 있었어요. '쓸모없는 인간이라 자살'.


음... 누구에 대한 쓸모일까요? 부모? 가족? 학교? 직장동료? 사회?


그들에 대해서라면 사실 저도 별 쓸모가 없어요. 약 15년간 니트 생활을 했고, 아직도 부모님 집에 살면서 생활비도 안내고 있으며, 오히려 아빠 카드로 커피 마시고 살아요. 집이 부유한 것도 아닌데.


학교... 저는 제가 졸업한 학교 입장에선 좀 창피한 동문일수도 있겠죠. 자랑스러운 동문들 통계치에 하나의 작은 마이너스가 되어주고 있을 거예요.


직장동료? 입사한지 얼마 안돼서 그렇다고 합리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냥 학교 다니듯 하면서 배우는 입장이라 한 사람 몫은 못하고 있죠.


사회? 저출산에 기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네요...


저는 그들에게 별로 쓸모있는 존재는 아니에요. 그런데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쓸모로 따지면 저보단 집의 콘센트나 냉장고 하나가 훨씬 쓸모있을 거예요. 제가 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을 하잖아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저랑 네이버도 비교가 안되는데 AI와는 더더욱 쓸모를 견줄 수 없겠죠.


그런데 저는 저한테는 엄청 쓸모가 있어요.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 보셨죠? 몸이 없으면 자유롭게 행동도 못하고 굴욕당하는거... 제가 먹고 싶은거 먹고, 듣고 싶은거 듣고, 가고 싶은데 가려면 저에겐 몸이 꼭 필요해요. 의식도 있어야 하니까 정신도 필요하죠. 저는 저 없이 살 수 없어요.


그리고 그게 제일 중요한거 아닐까요. 저 자신에게 쓸모가 아주 많다는거. 우린 세상 모든 존재들이 상호 연결되며 자의식이라는건 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자의식과 욕구를 가진 평범한 (그래서 행복한) 인간이잖아요. 우리 자신 외에 다른 존재에 대한 쓸모를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스스로에 대해서 쓸모가 없다고 느낄수도 있어요. 저도 많이 실망해봤고 지금도 가끔씩 실망중이지만, 글쎄요... 저는 저 자신이 이미 주어진 밥그릇처럼 느껴져요.


밥그릇이 작든 크든, 못생겨서 쳐다보기도 싫든 어쨌든, 금이 갔든 깨졌든... 저에게 주어진 밥그릇은 이거 하나뿐이에요. 교환, 환불 안되죠. 죽을 때 반납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설령 교환된다고 해도 전 교환하고 싶진 않아요. 제 경험을 지우고 성격, 외모 등등을 바꾼 새로운 무언가는 다른 사람이지 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이 밥그릇에 인생에서 주어지는 것들을 담고 있어요. 실망스러워도 방법이 없네요. 이 그릇은 저만의 개성이고 저 자신이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그릇은 놔두고 내용물에만 신경을 쓰기로 했어요. 저의 욕구에 맞는 맛있는 것들을 담아서 먹으려고요:)


그릇의 쓸모는 그런 거 아닐까요...?


저에게 제 쓸모는 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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