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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Sep 11. 2023

애도와 우울증

이 글은 지금 써야할 것 같아서 남겨봅니다.


나와 비슷한 경로로 우울증에 빠지고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 사람과 동시에 나를 위한 애도를 하게 된다.


가슴이 먹먹한 슬픔이 느껴지고 그 사람과 나를 뼛속깊이 연민하는 감정으로 가득찬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마치 생전에 친했던 사람인 것처럼 정서적인 연대감을 느낀다.


그런 감정에 격하게 몰입될 때, 두가지를 알아차리면 좋겠다. 고인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건 나의 우울증이 투영된 감정일수도 있다는걸.


우울증이 한창 심했을 때 다른 학교의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체적인 방법까지 들었다. 바로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나왔다. 마치 내 장례식을 치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어느순간 나는 그 사람을 나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죽음에의 충동을 느꼈다.


나도 그렇게 편히 잠들고 싶다는 마음, 나만 그런 선택을 하는게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 그렇게 죽는게 차라리 좋은(명예로운)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 등등.


나는 그 사람을 애도했다기보단 나 스스로를 애도하고 있었고, 그 사람을 위해 행동한게 아니라 나 자신의 우울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때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일은 중요하다. 때로는 분노하고 생존자들끼리 연대하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리플레이하게 될 때는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건 애도가 아니라 나의 우울증이 작동하는게 아닐까 하고.


어떤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나의 죽음을 바라는 방향으로 걷게 되는건 건강한 애도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럴 땐 병원의 도움을 받는게 필요할 수도 있다.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다르게, 정신과는 우울증같은 정신적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만 가는 곳은 아니다.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나의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분노로 잠을 못이루면 잠을 자기 위해서,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으면 그 아픔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기 위해서 갈 수도 있는 곳이다.


고인을 두고 나 혼자만 편하려고 약을 먹는다는게 죄책감이 될 수도 있다. 나를 해치는 애도가 진정한 애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내 삶의 무게와 고인의 죽음이 겹쳐지면서 이 기분 속에 머무르고 싶기도 하다. 이 기분이 이어져 고인과 같은 선택을 할 용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바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때, 즉 병원에 가야할 시점이다.


고인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죄책감에 몸부림치고, 고인보다 스스로를 더 연민하고 애도하는 우울증에 자신을 내어주지 말자. 물론 약을 먹어도 여전히 슬프겠지만, 살고싶은 내 마음에도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자. 약은 내 마음을 돌보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이어지는 죽음들을 볼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애도하고 있을지, 또 그중 우울증이 불러일으키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을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프다. 물론 고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슬프지만.


이곳에 작은 나의 글을 남겨놓는다. 마음이 흔들릴 때, 한번만 읽어보고 다시 생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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