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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Sep 16. 2023

내 이야기를 하기 싫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게 싫어졌다. 부끄러운건 아닌데 마음이 잘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매끄럽게 다듬어질수록 사적인 이야기를 팔아서 이익을 취하려드는 사람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울증을 팔아서 책을 쓰고, 세상 혼자 힘든 것처럼 글을 쓰고... 내가 사람들을 기망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내 앞에 남은 생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언제까지 상처를 끌어안고 주저앉아서 과거만 돌아볼 수는 없으니까.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과거 중 어떤 것들은 이제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내 상처를 이야기할만큼 마음을 열어놓고 다녔다. 병이 있으면 소문을 내라는 말처럼, 나는 내 마음의 환부를 다 드러내면서 이 병을 치료해줄 사람을 찾았다.


어떤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는 내가 용기있다고 했지만, 나는 눈을 가리고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이야기한 것 뿐이다. 그대로 계속 가면 죽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고 죽든 안하고 죽든 나에게는 큰 차이가 없었다.


실제로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상처는 조금씩 덮여갔다. 처음에는 만질 수조차 없는 생살이었는데, 진물이 나오고, 나중에는 조금씩 딱지가 앉았다. 속에는 여전히 선혈이 흐르고 있어도 아무튼 겉은 낫고 있었다.


내 솔직함에 마음이 움직여 나를 연민하고 내 손을 잡아주는 친구들이 생기면서부터는 속도 조금씩 낫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오면서 내 마음도 조금씩 닫혀온 것 같다. 치료해야 될 것들이 줄어든 만큼 굳이 내 마음을 전부 내보이지는 않게 된 것 아닐까.


물론 난 여전히 솔직하고 우울증에 대해선 당당한 편이다. 누군가 진솔하게 물어보면 정직하게 답해준다. 잘난 척, 당당한 척, 문제없는 척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굳이 누군가를 붙들고 내 마음을 꺼내 탈탈 털어서 보여주진 않는다. 그건 우울증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인듯하다. 


우울증이 있든 없든 나는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것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이제는 살지 못하는게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마음치유 프로그램같은 것들에 관심이 덜 다. 그 이유가 뭔지 계속 궁금했다. 이건 우울증 시즌 3일까, 단순한 무기력일까, 내가 왜 이럴까...


지금 생각해보니 현재의 난 약할지언정 죽어가고 있진 않다. 비록 촛불처럼 가늘고 위태롭지만 어쨌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삶에 몰입하고 있고 그 외의 것들에 조금 무관심해졌다. 물론 마음치유는 어느 단계에서나 필요하지만 완전히 면역력이 무너졌을 때의 치유와, 건강할 때의 마음 관리는 그 결이 다르다.


어쩌면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 또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무작정 고통의 반대편으로 걷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삶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건지도.


죽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사는 방법을 배울 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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