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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Oct 24. 2023

우울증이 지나가고 나를 발견하다


우울증이 걷힌 후에야 내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우울증인 동안에는 고통이 심해서 우울증 증상 외에 다른 것은 안보였나보다.


자기연민도 섞여있고, 세상을 향한 어리광도 들어있다. 남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일수도 있지만 나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는 얼마든지 못난 모습을 보여도 괜찮으니까. 내가 침흘리는 두살배기 아이라도 나는 나를 인정하고 돌봐줘야 한다. 침 닦아주고 어지럽힌걸 치워줘야 한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내 안에는 상처받을까봐 잔뜩 두려움에 떨면서 굳어있는, 덜 자란 내가 있다. 한없이 약하고 외롭고 불안에 떠는 자아가...


내가 용기있게 밀고 나갈 때 나는 강한게 아니라 너무 두려워서 이판사판으로 행동하는 건지도 모른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내가 심하게 화를 낼 때 나는 내 약한 모습을 들킬까봐,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공격당할까봐 두려워서 더 세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행복이나 칭찬, 즐거움 속에서도 그것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언제 부서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들을 놓친 경우도 많다.


내 자아는 불안으로 항상 숨가쁜, 아주 연약하고 작고 어린 모습이다. 그 자아는 누가 잡기만 해도 부러지고 툭 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다.


어쩌면 그동안 우울증이라는 먹구름에 가려 햇빛 한번 못보고 시들시들해진 건지도 모른다. 자라지 못한 내가 내 안에 있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조금 막막하다.

나를 키운다는거.

'나 육아'는 처음이라... 심리책이 아니라 육아책을 읽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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