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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한가운데보다 힘든 것

by 오렌지나무


우울의 한가운데를 빠져나왔다. 난파선에서 구출되었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해변가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곧 죽을 거라고, 나의 미래에는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땐 내가 뭘 해도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하다못해 다이소에 다녀온 것도 뿌듯했다. 오로지 하루 살아있는 것밖에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덜 느꼈다. 이미 죽었을 사람이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것, 그건 굉장히 단순한 거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나는 내 힘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우울의 한가운데를 빠져나왔다. 직장도 생겼고 친구도 있고 매일 외출도 한다. 지금은 편하게 카페에 들어갈 돈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불행해서 약을 먹고있다.


내 앞날에서 임박한 죽음이 사라지고 지겹게 긴 삶이 다시 이어졌을 때,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우울증으로 잃어버린 것들과 다시 마주해야했기 때문이다.


큰 공백기로 경력도 없는 내가 뭘 해서 먹고살지도 아득하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연애도, 결혼도... 무엇하나 이루어진게 없고 외로움만 가득 고여있다. 주위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낳고 하는걸 볼 때마다 맘이 아프다.


우울에는 과연 끝이 있을까? 우울증, 그 다음엔 우울증으로 상실한 것에 관한 우울증. 그 다음엔? 나는 언제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껴줄 수 있을까?


나는 또 이겨내려고 약도 시도해보고 여러 모임,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니트컴퍼니 18기도 하고 있고, 마을활동도 하고, 전시회에 같이 가는 모임에도 나가보려고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있다. 뭐든,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하고 있다. 끝은 모르겠지만.


우울증은 참 만만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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