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은이렇다. 물웅덩이의 어두운 수면 아래 검은, 형체만 어렴풋이 보이는 물고기들이 무수히 오가고 있다. 우리는 이 이질적인 세계를 알 수 없다. 다만 수면에 비치는 어둠만을 바라볼 뿐이다. 알 수 없는 공포 속에서.
맨 처음엔 제목만 보고 환경보호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앞부분을 읽기 시작했을 땐 소설같았고 이 책을 1/4쯤 읽다가 드디어 초록창에 검색을 해봤다. 이 책의 장르가 도대체 뭔지.
이 책이 논픽션이라는건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충격은 더 커졌고 마치 고요한 스릴러를 읽는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것 같은 문제들(인생의 가치, 살인사건, 미국에서의 우생학, 인권, 공동체의 힘 등등)에 관해 이렇게 잘 엮어서 쓸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씨줄, 날줄이 탄탄하게 엮인 책이고, 내용도 의미있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스포주의: 이 책은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보시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보신 분들이나 안 보실 분들만 후기 읽어주세요:)
1. 문제의 출발점
이 책은 저자의 개인사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우울증(?)으로 인해 어릴 때 자살시도 경험이 있고,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드디어 가정다운 가정을 이루지만, 어느날 작가가 어떤 여자와 키스하는 사건이 일어나 남자가 떠나버린다(여자인 작가는 양성애 성향이 있는데 이 사건 이전까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남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고통받고 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으려 한다.
이 부분 때문에 소설같았는데 논픽션이라고 한다. 양성애니 바람이니 하는게 너무 TMI같고 이상해보일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떠받치는건 저자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그 답을 찾으려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연구하다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의 의미를 해석하는 한줄 한줄이 작가에게는 절박한 질문들이었던 셈이다.
2. 두 개의 세계관
이 책에서는 두 개의 세계관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작가의 아버지의 것,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것이다.아버지의 세계관은 혼돈, 데이비드의 세계관은 질서로 요약할 수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노장 사상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인생에는 아무 의미가 없고 신도 없고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다고. 세상은 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그저 혼돈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져도 우리는 한 마리 개미와 다를 바 없고 더 중요한 존재도 아니라고한다.
하지만 작가의 아버지는 염세주의는 아니고, 이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주의였다. 신도 없고 운명도 없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니... 사명이니 계획이니를 찾을 것 없이 자기가 원하는걸 하면서 살면 된다.
그런데 어렸던 작가에게는 이 말이 염세주의 비슷하게 들렸던 것 같다. 그녀는 이 세계관을 힘들어한다. 아무데도 기댈 데도 없고 위로받을 곳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리고 언니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우울증에 걸리고, 작가도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그녀는 그 어디에도 갈만한 곳이 없다고 느낀다. 아버지가 말한 이 무정하고 차가운 세계 속에서 어떤 희망을 찾다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연구하게 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관은 정반대이다. 그의 스승 아가시는 세계가 신의 섭리라고 믿었고 과학은 신의 질서를 찾고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비드는 스승과 달리 냉철한 과학자로서 다윈의 사상(신은 없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모든 동식물이 연결되고 지위가 정해져있다는걸 믿었다. 그는 그걸 드러내줄 청사진을 추구했다. 신 대신 시간(종의 발전, 퇴화 모두 시간과 연관되어 있다)이 만드는 질서였다. 그는 생물들 속의 청사진을 밝혀내 인류를 진보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했다.
3.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따라서
작가는 데이비드에게서 삶의 희망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의 일생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자어류학자이다. 그는 총 1,085속, 2,500종 이상의 어류를 찾아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데이비드의 인생에도 불의의 사고는 많았다. 대표적으로 그가 만든 수천종의 어류 표본들이 지진으로 전부 케이스가 깨져 나뒹구는 큰 사건도 있었다(표본의 이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그의 평생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표본에 이름을 꿰매기 시작했다. 절망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작가는 여기에서 희망의 빛을 본다.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질서를 다시 구축하려는 힘, 실패할걸 알면서도 밀고 나아가는 그 의지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계속 데이비드의 일생을 추적한다.
그런데 그녀는 결국 데이비드의 그 의지가 자기기만이라는걸 발견하게 된다. 데이비드가 답을 갖고 있었던게 아니라 스스로 긍정적 착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라는걸 알게 된다.
더욱이 데이비드의 삶에는 문제가 많았다. 자연의 질서를 찾고 인류가 진보할 방향을 추구하던 그는 우생학에 빠지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살 가치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살 가치가 없다는.
데이비드는 장애, 마약, 범죄 등을 가진 사람들을 퇴화의 증거로 보고 이들의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 미국에서는 당사자의 동의 없는 불임수술이 법적으로 허용되는데 이르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따라 불임수술을 당했다. 작가는 우생학과 불임수술의 시초가 독일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밝혀낸다.
4. 다시 아버지의 세계관으로
결국 데이비드도 희망이 아니었다. 세상의 질서를 찾아내려는 노력, 그 끝의 추악한 진실들과 마주한 작가는 다시 아버지의 세계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을 알 수는 없었다.혼돈 속에서 어떤 희망도 없는 마음으로 다시 남겨졌다.
5. 다 알 수 없는 세상의 신비로움
그러다 몇가지 사건들이 일어난다.
우선 '어류'라는 분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발견이 나왔다. 데이비드의 평생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결과였다. 현대의 과학적 사실은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자연은, 생명은 여전히 인간이 알지 못하는 신비로움을 가진 채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었다.
작가 역시 평생 갖고 있던 어류에 대한 관념을 포기하면서 자연은 경계가 없고 아무런 기준선이 그어지지 않은 곳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고 그녀는 더이상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깨고 나온다.
그리고 혼돈의 세계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고 이를 받아들인다. 그녀가 찾던 답은 바로 질문 옆에 있었다. 상실 옆에는 얻음이, 죽음 옆에는 삶이, 부패의 옆에는 성장이 있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양성애자라는걸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산다.
이게 내가 이해한 이 책의 내용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린 시절부터 출발하길래 그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점차 드러나는 그의 행적은 충격적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책의 제목, 그리고 범주를 깨고 인생 그리고 자연 자체를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작가의 언니는 어류라는 범주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걸 쉽게 받아들이는데, 그 이유는 그녀 자신도 사람들에게 항상 오해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고 밀쳐내는 세상 속에서 살다가 범주를 깨고 자유롭게 나아가는건 어떤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