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 아니, 거의 매일인지도 모른다.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뚱뚱해진 내 몸을 볼 때, 게으르게 일하면서 스스로 이 정도면 폐급 아닌가 자문할 때, 뭘 해야지 하고 빼곡하게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한달 지나고 보니 제대로 한게 없을 때. 나 자신에게 실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되묻고 싶다. 나는 살아있어. 그리고 일상을 보내고 있어. 나에게 뭘 더 원해?얼마나 더 해야 사람다운 건데? 라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샤워하고 머리를 감는 것, 화장하는 것, 출근하는 것. 매일 반복되는 이런 일상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화장하려고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오늘의 파운데이션은 과연 뜨지 않을까, 콧볼 부분은 괜찮을까, 오늘의 눈썹은 과연 잘 그려질까... (풀메가 아님에도) 화장만 해도 시지프스의 노동이 따로 없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쉽지는 않다. 매일 그날의 바위를 지고 산을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화장을 마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한 셈이다. 뭘 더 바랄까.
일상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간은 충분히 버거운데 (그래서 일탈의 즐거움이 꼭 필요한 판인데) 거기에 성실함이니 노력이니 하는 짐까지 얹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