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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꽃 도둑

 

 우리 아파트에 너무나 근사한 수국 꽃이 있다. 수국을 나무라고 불러야하나 싶을 만큼 둥치가 큰데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꽃 색이 어찌나 짙게 변해 가는지… 보라가 이렇게 예쁜 색이었는지 올 여름, 수국을 보면서 다시 느낀다. 

 산책길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방향 지워진 것은 수국 때문이었다. 며칠째 계속 수국 앞에 가서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초여름의 수국을 퍽이나 즐겼다. 주희는 우리 집에 수국을 심자고도 했다. 꽃 색이 절정에 이르고 이제 약간 시들해 질 무렵의 어느 날, 어차피 시들어 떨어질 건데 이쯤해서 한 송이 서리해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한 번 들고 나서는 새벽이나 밤, 사람 없을 때를 노려서 정말 한 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드디어, 사건 당일. 비가 오는 청명한 아침, 어젯밤 잠은 덜 잤지만 상쾌한 빗소리와 함께 하루를 알차게 잘 지내보고 싶은 의지가 솟아올랐고, 문득 수국 생각이 났다. 빗물에 더 선명해졌을 보라가 떠올라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밖으로 나갔다. 마치 상습범처럼 작은 가위와 넣어 올 가방 까지 챙겨서. 


 내 행동에 대해 두근거리거나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 보다 꽃을 보자 어차피 이 비 맞고 나면 많이 상하고 떨어질거니 가져가도 될 적절한 타이밍이란 생각으로 그 와중에도 행동에 여유가 있어졌다. 그래도 나름의 양심을 발휘하여 제일 예쁜 꽃 말고 한쪽은 좀 허물어져 가는 붉은보라 수국 한 송이를 꺾었다. 가려고 하다가 푸른 보라도 한 송이 갖고 싶어져서 꺾는 순간, 

 "아줌마!"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1층 창문이 의외로 바로 가까이에 있다. 젊은 여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줌마, 꽃 꺾으면 안돼요!" 

 한다. 젊은 여자 뒤에는 그녀를 지지하는 모임처럼 다른 가족들도 험악한 기세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게다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대가족이었다.

 "죄송합니다." 

 둘러대듯 말하고 그 곳을 서둘러 벗어나려고 하자 

 "이 아파트 사세요?" 

 하면서 쫓아나올 기세다. 그 때 부터 위협에 대해서는 도망가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이 무거운 다리를 최고 속도로 움직이게 했다. 사자성어로 삼십육계. 그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여의치 않으면 피하라!' 그 때의 심정은 단하나! '잡히면 끝장이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훔친 꽃을 담은 시장바구니를 들고, 장화를 신고 달리는 아줌마, 그녀의 이름은 꽃 도둑! 

 모퉁이를 돌다가 경비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친 것도 걸리고, 혹시나 그 여자가 집요하게 추적해서 CC TV를 동원하고 경비를 앞세우거나 경찰을 대동해서 우리 집 벨을 누르는 건 아닐까. 방송에서 아침에 꽃을 꺾은 중년 여자를 찾는 안내가 나오는 건 아닐까. 만약에 죄가 적용되면 어떤 벌을 받게 되는 걸까. CC TV에 찍힌 내 모습이 프린트물이 되어 게시판에 붙는다면? 이사 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사 가야 할 만큼 처참한 지경 까지는 안 되겠지. '잘난 척 하더니 너 때문에 부끄러워서 못살겠다.' 남편이 나를 타박할 것이 틀림없고, 주희도 내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결국 실망하게 되겠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불을 다 끄고 커튼도 내리고 보통 때면 배불리 먹었을 아침 밥맛도 없었다. 범죄자들의 심정까지 뼛속깊이 이해가 되었다.




 그 동안 달리기에 관한 책을 세 권이나 읽고 달리기 해야겠다는 계획을 수십 번도 더 세우면서도 달려지지 않았는데 도둑으로 잡힐까봐 전속력으로 달린 덕분에 집에 와서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리고, 절박하게 기도를 하는 내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났다. 

 시간이 좀 지나고 세상이 다시 좀 잠잠해지자 그 사건의 포커스가 달리기로 잠깐 옮겨 가면서 '그래, 내가 달리기에 달란트가 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때 여러 차례 릴레이 선수였던 것도,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달리기 하는데 운동장 같이 썼던 남자 중학생 애가 "우와! 벤존슨 누나다!" 하며 감탄할 만 했던 나의 달리기 실력, 5킬로, 10킬로가 고작이지만 몇 차례 나갔던 마라톤 대회 까지. 달리기에 대한 생각 끝의 결론은 달리기가 명상적이니 뭐니 하지만 달리기는 역시 잘하고 봐야한다는 것.


 힘들게 꺾어온 꽃을 예쁘게 꽂아서 식탁 위에 올렸는데 예쁘긴 하지만 지금 이 사건이 없었다면 그저 예뻤을 꽃이 불안한 마음이 겹쳐져서 예쁨을 향유할 수만은 없는 좀 다른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버리기는 아깝고 집 안 중심에 떡하니 두기는 마음이 불편하고 해서 내 방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곳에 있는 수국 나무 근처도 이제 이 사건 이전처럼 쉽게 편안하게 못 갈 것 같고, 분명 달라졌다. 꽃을 꺾고 꽃 도둑이 된 이 후의 나와 수국의 관계가. 


 수국 사건으로 또 다른 내 인생의 이와 비슷한 사건이 엮여져서 건져 올려 진다. 

아주 어릴 적에 학교도 가기 이전에 동네에서 어묵을 사 먹었는데 어묵이 끼워진 막대에 빨간 테입이 붙은 것은 20원이었고, 표시가 없는 것은 10원이었다. 나는 10원을 가지고 가서 빨간 테입이 붙은, 그러니까 20원 짜리 어묵을 먹었다. 그 때는 정말 그런 차이를 몰랐다. 미취학 꼬마아이가 어찌 그런 심오한 차이를 알았겠는가. 당시 어묵을 팔았던 관순이 언니가 "20원 짜리를 먹었으니 나중에 10원 가져와."라고 말했고, 나는 알겠다고 해놓고 그 뒤로 그 쪽을 안가거나 돌아서 가거나 피해 다녔다. 나중에 이사를 와서도 가끔 그 동네에 갈 일이 있으면 그 일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 골목으로 가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지금 생각해보면 10원을 갖다 줬으면 끝났을 불안을 왜 그랬을까. 생각도 들지만 그것이 일곱 살의 한계였겠지.


 좀 더 컷을 때의 사건이 하나 더 있다. 2학년 때였다. 내 유년시절 전반을 함께 했던 친한 친구 오은정이 있었고, 집이 부자였다. 우리 집도 당시에 가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은정이네는 아버지가 세관에 근무하시고, 엄마가 수입 상품을 파는 일을 하셔서 집에 있는 문구류나 장식품들이 보통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방구에서 파는 수준의 물건이 아니었다. 부럽다는 생각은 했겠지만 몰래 훔칠 생각은 못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은정이가 식구들과 밥을 먹고 있을 때, 내가 가지고 갔던 스케치북에 은정이 스티커를 끼워가지고 집에 가겠다며 급히 나가다가 스케치북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스티커가 떨어졌고, 들키고 뭐하고 할 것도 없이 현장에서 범죄가 그대로 들통나고 말았다. 그 뒤의 상황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인지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필름이 이어지는 시점은 중학교 1학년으로 부쩍 올라간다. 

 은정이와 다시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 때 내가 좋아했던 친구에게 내가 어릴 때 자기 물건을 훔쳤다는 말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분했지만 사실이었기에 뭐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고, 자비심 없는 은정이가 원망스러웠다. 까짓 스티커 하나로 그동안의 우리의 소중한 우정을 짓밟아 버린 은정이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제법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으로 우리의 관계는 정리되었다. 


 이어서 내 것을 친구가 탐한 경우들이 몇 건 기억 속에서 건져 올려졌다. 초등학교 때, 샤프, 머리띠, 좀 더 컷을 때는 카셋트에 이르기 까지. 그 때 나의 반응은 자비심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인간으로 변모하여 내 물건을 탐한 친구를 가차 없이 도둑으로 몰아세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처했던 선생님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범인이 나올 때 까지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해서 너무 오래 그러고 있다가 쓰러지는 아이가 나온다든가, 때릴 데도 없는 어린 아이들을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린 일도 있다. 그럴 때 자기가 안 해놓고 그 상황을 종료시키기 위해 나섰던 멋진 남학생도 생각나고. 그런 의외의 일로 두근두근 첫사랑이 시작되기 까지도 하는. 

 현재의 사건에서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이 피 말리는 경험들을 잊지 않는다면 나는 아주 훌륭한 자비심을 지닌 조언자가 될 수 있으리라.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비둘기로 이 일을 반추하며 사건을 종료하려 한다.

비둘기 한 마리의 침입으로 인해 그의 안락했던 공간은 순식간에 불안과 공포의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이제 그 안락했던 방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하는 곳이다. 방에서 도망치기 위해 열쇠구멍으로 비둘기를 바라볼 때 그는 수치심에서 분노로, 다시 체념으로 심리상태가 급격히 바뀌어 간다. 일상이 송두리째 파괴되면서 극단적 나락으로 치닫는 잊을 수 없이 강력했던, 

“너는 이제 끝장이야.‘

라는 말로 귀결되는 소설. 


 꽃을 꺾는 것에 대해 '꽃이 아파요.'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는 것을 꺾는 것은 무조건 나쁜 행동이다.'거나 일반적인 잣대가 아니라 '한 송이 일 때 그것을 꺾어버리거나 꺾어서 함부로 한다면 안 되겠지만, 많이 있는 것을 조금 꺾어서 소중하게 꽂아두는 건 괜찮다. 모든 만물은 인간을 위해 하느님이 만든 것이다.' 나름의 원칙으로 당당하게 살아온 수년이 오늘 아침의 달리기 한판으로 ‘이제 절대로 이러지 말아야 겠다’ 는 저자세로 곤두박질쳤다. 


 비둘기에서 쥐스킨트의 질문을 나에게 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둘러싼 확실해 보이는 것들이 완전히 부서지는 데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가 궁금해졌다.'

잡혔으면 끝장났을 하루가 안 잡힘으로써 내 자리에 커피를 틀고 앉아 범죄를 소재로 주인공이 되어 글을 쓰는 우아한 하루가 되었다. 지금 밖에 나가서 누군가에게 '얼굴 좋네요.' 소릴 들으면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가 '살쪘지요?' 소릴 듣는 즉시 언짢음으로 부글거리게 될테고. 조그마한 일상의 시련에도 감정의 급격한 물살을 타며 과거의 상처를 들춰낼 것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은 산책을 하다가 흙탕물이 내 옷에 튀면 짜증을 낼 테고, 그러다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며 살아있음에 행복해 하겠지.

 '맹자가 칠십 세에 종하여,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여도 규범에 벗어나지 않는 경지에 올랐다.' 던 일화를 애써 떠 올리며 수치심을 달래본다. 

 ‘그래, 이런 모욕으로 나의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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