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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원숭이 마음

 

 내 안에 두 마리 원숭이가 있다. 한 마리는 차분하고 지혜로운 원숭이이고, 한 마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왔다갔다하는 시끄러운 원숭이다.

 지혜로운 원숭이는 불교 경전과 설화 속에서 악을 물리치는 상징 및 의리의 조력자로 나타난다. 양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두 귀를 막고 입을 가리고 있는 세 마리의 원숭이는 감각기관인 눈, 귀, 입을 조심하라는 경계의 의미가 있다. 나쁜 것을 보지 말고, 나쁜 말을 듣지 말고, 나쁜 말 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반대로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말을 듣고, 좋은 말을 하라는 것이다. 꿈 속에서 본 내 안의 지혜로운 원숭이는 자그마한 체구에 맑고 동그란 눈을 가진 흰색 털을 가지고 있었다.

 시끄러운 원숭이는 머리를 긁고 코를 만지고 음식을 먹고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부산하게 건너다니는 원숭이의 습성과도 같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 마음을 상징한다.

 법구경에는 인간의 마음을 부산한 원숭이에 비유하고 있다.

‘방탕한 마음이 음행에 없으면

애욕의 넌출은 뻗고 자라나니

나무 열매를 찾는 원숭이처럼

이리 저리로 미처 돌아다닌다.‘

 눈, 귀, 코, 입, 몸, 의식, 감각기관으로 알아차리는 마음의 작용이 우리 안에 두 마리 원숭이를 키우게 한다. 

     

 조르조 아감벨의 『행간』에 시끄러운 원숭이 마음이 너무나 적절하게 잘 표현된 부분이 있다. 조르조 아감벨은 시끄러운 원숭이라는 주제로 쓴 것이 아니라, 중세의 칠죄종 중 ‘나태’를 표현한 글인데, 이 글에서 집중하지 못할 때의 내 모습이 보였고, 그런 내 모습에서 시끄러운 원숭이가 보였으니 열등한 내 모습을 매개로 시끄러운 원숭이는 나와 함께 중세의 칠죄종 중 나태에 걸려든 셈이다. 씁쓸한 공감의 웃음을 터뜨릴 그 기막힌 묘사를 소개한다.

‘나태한 인간의 시선이 집요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창가에 머문다. 그는 누가 찾아오는 장면을 떠올린다. 문이 조금만 삐걱거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또 무슨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본다. 하지만 길가로 나서는 대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원래의 자리로 무기력하게 돌아와 앉는다. 책을 읽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독서를 중단하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진다. 손으로 얼굴을 비빈 뒤에 손가락을 펴고 눈을 들어 시선을 벽에 고정시킨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모든 말들의 마지막 음절을 더듬거리면서 몇 줄 더 읽어 내려간다. 그러는 사이에 쓸모없는 계산으로 머릿속을 채우면서 책과 공책의 페이지 수를 세기 시작한다. 글자와 눈앞에 있는 멋진 세밀화들이 미워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덮어버린 책을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무언가를 빼앗겼다는 느낌이,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어야겠다는 느낌이 그를 잠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이런 심리적 현상을 ‘정오의 악령’으로 의인화해서 표현한 조르조 아감벨과 ‘나태’를 영적 삶을 침범하는 영적 질병으로 파악한 중세의 수도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또한 아감벤은 기쁨의 반대가 슬픔이 아니라 나태라고 말한다. 깊이 새길 말이다.


 꿈에 오래전 친구가 철창에 갇힌 원숭이 한 마리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 옆에서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원숭이는 새까맣고 덩치가 컷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가 번뜩이는 사악한 모습이었다. 그 친구는 이 원숭이를 마음에 안 드는 남자가 준거라서 다시 돌려주러 간다고 했고, 나는 다급한 모습으로 빨리 돌려주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 빨리 일어나라고 말했다.

 가끔씩 내가 쓴 글을 쭉 읽어보면서 어떤 글에서는 내가 쓴게 맞나? 싶을 만큼 스스로 위로 받기도 하지만, 어떤 글은 Delete 키를 눌러 삭제 하고 싶은 민망한 글도 많이 있다. 그건 현재로 부터 시간적으로 오래된 것일수록 더하다. 삭제하지 않고 놔두는 것은 미숙한 당시의 나도 나의 일부이고, 그 미숙한 나를 대면하는 일시적인 부끄러움보다 전체적 조망으로는 성장의 자료가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급한 시간을 쪼개서 쓴 글은 그 상황에 따라 내용적으로는 더 강력한 것일 때도 있지만 감정은 많이 거칠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비교적 여유 있는 상태에서 쓴 글은 표현은 매끄럽고 감정은 차분하지만 메시지가 약하고 힘이 없는 측면도 보인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장단점이 있다.

 원숭이 꿈을 꾼 날, 내 글을 읽다가 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건 깜짝 놀랄 정도의 강한 느낌으로 마치 라식 수술을 한 사람이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과도 같았다. 

 며칠 전만해도 읽어보면서 괜찮아 보였던 글들에서 단어 선택이나 표현이 너무 거칠고 공격적인 것을 발견하고 놀랐고, 이어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볼 때도 그랬다.


 어떤 블로그에서 심리학 개념으로 쓴 글을 읽었는데, 자신의 그림자와의 화해, 사회적 자아인 에고를 깨닫고 본성인 셀프의 기특함을 얘기하는 내용이었다. 그 글은 강조를 위한 부사의 사용이 중복되거나 단언하는 어미 등 요소요소에서 긍정적인 힘으로서의 강함이 아닌 스스로를 걸러내지 못한 거친 감정이 느껴졌다. 개념적으로는 맞지만 문체와 단어 선택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서 자신이 쓰고 있는 글과 자신의 결이 고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으면서 한없이 겸손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두려움이 올라왔다. 나도 누군가에게 말로, 글로 이런 불편한 감정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의 두려움이었다.

 나무의 표면을 고르기 위해서 대패질을 할 때 나뭇결대로 대패질을 하지 않고 역으로 하면 나뭇결이 반대로 치솟아서 표면이 더 거칠어지는데, 텍스트 자체와 그 텍스트를 다루는 전후맥락의 감정인 맞지 않을 때 표면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나무를 만지는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은 좋을 리가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면의 가시가 손에 박힐 것 같은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에고와 셀프 개념을 다루는 글에서 각각의 개념은 정확하게 꿰뚫어 설명하고 있고, 자신은 그 차이를 깨달았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자신의 그림자와 화해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런 좋은 말들 일색인 그 글에서 자신이 경계하고 있는 단단한 에고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림자, 에고, 셀프 이런 개념으로 타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 조차 부적절하다는 느낌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경구가 떠올랐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텍스트 일색인 글에서 머리만 느껴지고 가슴은 느껴지지 않는 글도 있고, 문체나 내용은 투박하고 글솜씨는 부족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도 있다.

 요즘 느끼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도 본 성품에 의해 연마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는 보여지지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것이다. 그 그림자가 거둬지는 것은 자신이 그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 뿐이라는 생각이다.


 꿈에 나온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사악한 원숭이는 구강적 공격성을 가진 나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안에 있는 그 감정을 봄으로써 글에서 거친 것들을 걸러낼 수 있는 좀 더 미세한 시선을 갖게 된 것 같다.

 10호 짜리 마음의 채로 불순물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어느 정도 걸러져서 더는 거를게 없다싶으면 9호, 8호, 7호... 더 촘촘한 채가 끝도 없이 쌓여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거친 감정은 내가 아무리 좋은 단어를 선별하고 멋진 문장을 구사해도 숨길 수 없는 표정 처럼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무섭게, 또는 다행으로 알아가고 있다. 


 정신물리학의 창시자, 구스타프 테오도르 페히너는 이렇게 부산하고 거칠게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식물들의 생각을 전해준다.

 ‘뛰고 소리치고 게걸스레 먹어 대는 영혼이 있다면 침묵 속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으며 이슬로 갈증을 풀고 새싹으로 충동을 분출시키는 영혼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식물은 인간이란 두 발을 가진 짐승은 왜 저리도 분주하게 돌아다닐까 궁금해 하면서 자신이 뿌리를 박은 곳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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