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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19

꼬마손님들

 

아이 1

 내가 맡고 있는 김밥 파트는 일반적으로 아는 김밥과 볶음김치를 넣고 달걀지단으로 만 김치말이 김밥, 속재료가 하나씩 들어가는 여섯 종류의 꼬마김밥, 이렇게 세 종류의 김밥이 있다. 특히 작은 사이즈의 꼬마 김밥은 이 동네 다른 김밥 집에서 팔지 않는 특화 상품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작고 앙증맞은 모양새 때문에 꼬마 손님들도 많이들 찾았다.

 오늘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꼬마 김밥 4개를 주문했다. 그러더니 500원짜리 김밥을 하나씩 따로따로 포장해 달라고 했다. 내가 한 달 보름 가까이 일하면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거니와 포장비도 아껴야 하기 때문에 이럴 경우,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정해진 규칙이었지만, 그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김밥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부연 설명을 하는 바람에 그 경계가 허물어져 버렸다.

 아이 얼굴이 너무 맑고 예쁘고 말도, 마음도 너무 예뻐서 하나씩 하나씩 정성껏 포장해 주었다.

 포장한 김밥을 자전거에 부착된 작은 가방 속에 야무지게 넣고는 자전거에 올라타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친구들에 김밥을 나눠주며 행복해하는 모습까지 그려졌다. 선물을 받은 그 친구들도 이 김밥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아이 2

 "역시 반팔은 멋있어. 긴팔은 멋있지가 않은데..."

 흰색, 검은색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오렌지색 반바지를 입고 연두색 어린이집 가방을 멘, 틀림없이 일곱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말했다.

 퇴근 시간 대, 피로에 지친 무표정한 어른들 속의 유일한 어린이인 이 아이는 복잡한 손님들의 대열 속에서 반팔을 입은 자신의 팔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아이 3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이가 혼잣말로 "상어가 동물들을 잡아먹었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 엄마가 "뭐라고?" 하니까 아이가 다시,

 "상어가 동물들을 잡아먹었어." 한다.

 그 말을 하는 아이는 웃거나 무서워하거나 하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는데, 표현 자체에서 아이 엄마가 불안을 느꼈는지 이런 말을 했다.

 "상어는 배 안 고프다는데?"

 아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젊은 아이 엄마는 못내 그 말이 걸렸는지 과장된 밝은 표정과 높은 톤의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상어 뱃속에서 동물들이 뭘 하고 있을까? 동물들이 노래하고 있을 거야."

 아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이 4

 튀김 이모인 애영언니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두 발은 분식집에 붙어 있지만 마음 한편에 흐르는 추억을 소환해 피아노곡을 틀어놓을 때가 있다.

주로 모차르트나 바흐, 쇼팽 곡 등 대중적인 클래식을 틀었는데, 소나티네 곡 집을 틀었던 날, 높고 맑고 빠른 피아노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지자 한 외국인 꼬마 아이와 아빠가 들어왔다. 아이는 음악 소리를 감지하자마자 팔다리를 크게 움직이면서 자신만의 감흥을 즉흥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분식집 내외빈 여러분들께 기쁨을 선사했다.       

 

아이 5

(영화 속의 아이) 

아이 엄마는 아빠의 생일을 맞아 생일 케이크를 만들려고 한다. 아이 엄마는 뱃속에 아이의 동생인 둘째를 갖고 있다. 남편의 생일날 자살을 하려고 호텔에 갔다가 둘째를 낳고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함께 생일 케이크를 만든다. 남편은 자신이 꿈꾸던 바로 그 순간이라며 행복해하지만 아내는 축하와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하다.

 아이에게도 늘 좋은 말을 하지만 엄마 자신은 늘 우울하고 불행하다.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감지하는 아이도 뭔가 우울하고 불행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원래" 인간은 몸과 마음이 일치를 이루었다. 몸과 마음의 분열을 생존을 위한 대가로 정당화하면서 아이는 어른이 되어간다. 세상과 하나이던 융합된 정신에 경계를 세워가며 하나씩 배워나간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경계와 과도한 억압으로 인한 병리적 분열이 섞여있다. 어른이 된 인간의 불행은 몸과 마음의 불일치. 부조화. 거짓에 있다. 가짜감정에 익숙해진 나머지 가짜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몸과 마음을 위험한 상태로 내몬다. 아이의 좋은 측면과 버려야 할 아이의 미숙한 측면을 가려내고, 어른의 성숙한 측면과 과도한 경직과 의심을 분별해야 한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언제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마침내 그것을 깨달으며
삶을 그 자체로 사랑하면
그런 후에야
접는 거예요.

 아이 5(영화 속의 아이)는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에 나오는 아이의 이야기이고, 인용한 글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메시지다. 흐르는 강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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