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동선,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일인데도 어떤 날은 기분이 좋을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지루하기도 했으며, 과거의 괴로움과 미래의 불안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은 날은 좋았다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 영하의 날씨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동선,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일임에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에 의해 마음속 불안의 불씨가 타올랐다가 잠잠해졌다가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도 크게 요동치지 않는 일정한 불길이 되어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더 내적인 감정, 더 오래되고 미세한 감정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같은 일을 하는대도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했다.
큰 인형 안에 똑같은 모양의 작은 인형이, 그 안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마음속에 여러 단계의 채가 있는 것 같았다. 10호 채로 큰 불순물을 걸러내면 9 호채로 보다 작은 불순물을, 다음으로 더 미세한 티를…, 끊임없이 걸러내야 하는 마음의 불순물들을 보았다.
마감 청소할 때의 특별한 경험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청소 일에 의미를 끊임없이 부여하며 새롭게 일어서고 일어서던 나날, 매일 씻는 무겁고 커다란 어묵통에 문제가 생겼다. 바닥 네 모서리 한쪽 귀퉁이가 닳아서 구멍이 난 것이었다. 청소하는 입장에서는 새것으로 교체해 주면 좋겠는데,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알뜰한 사장은 떨어져 나간 귀퉁이에 금속 재질의 테이프를 붙여서 임시방편을 했다. 금속 테이프도 닳을 무렵이 되면 새 테이프를 덧붙이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작은 일이지만 번거로운 일이 추가되어 불만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때 놀라운 꿈을 꾸었다. 어묵통에서 거북이가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불만을 가득 가지고 있던 떨어져 나간 그 귀퉁이가 오래되고 깊은 바다에 연결되어 고대 이집트 지하 왕국에서 온 거북이었다. 거북이는 태고의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했다. 그 꿈은 곧바로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이런 가게 사장이 되려나, 여기서 앞으로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져도 보면서 반복되는 지루함을 보다 활기 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선물이 되어주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꿈을 꿨다고 해서 "앞으로"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보여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머스 머튼은 말한다.
"감자 깎는 일 하나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있다"라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비슷한 표현을 했다.
"주님께서는 냄비들 한복판에도 계시다"라고.
나도 분명히 보았다. 어묵통 안에서 기어 나오는 거룩한 거북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외롭고 고독한 삶의 밑바닥에서도 하느님께서 항상 돌보아주셨음을.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는 동안, 가끔씩 멈춰 서서 그 거북이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그 꿈의 조각과 다른 꿈들, 현실의 경험과 사유들을 엮어 글을 썼고, 첫 책을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