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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19

옷차림. 음식. 음악

 

 지금까지 수년간 새벽 청소 알바를 하면서 여러 옷들을 입어왔고, 다양한 간식들을 먹어왔고, 수많은 음악들을 틀어왔고, 그 옷차림과 간식들과 음악들의 변화와 더불어 마음의 성장을 느낀다.        


1. 옷차림

 새벽 시간에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존재 깊숙이 바람을 느끼는 일이었다. 한 여름이 아니고는 늘 바람에 대비해서 겹겹이 옷을 잘 입어야 했고, 도착해서 일을 할 때는 한 겨울이 아니고는 옷이 땀에 젖을 정도의 강도 높은 일이기 때문에 너무 덥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옷을 입어야 한다. 모든 것이 적당한 조건을 갖추는 것은 중요했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되어가는 일이었다. 

 처음에 그 조절을 잘 못했을 때는 바람을 맞아서 춥고, 땀을 흘려서 덥고 추위와 더위, 비 오는 날의 습도와 미끄러움 등의 외부적인 요소들에 쉽게 짜증이 났다. 불만스럽고 힘든 마음은 곧 원망과 의문과 불행한 감정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럼에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짜증과 불만과 힘듦을 일으키는 조건들 즉, 좀 더 나은 비옷과 장화, 장갑, 헬멧, 방한용 바지, 마스크 등을 점검해서 더 나은 조건의 요소들로 대체시켜 나가는 것으로 해결해 나갔다. 하나하나의 디테일, 구체적인 것이 중요했다. 그러는 사이 바람과 비와 어둠이 처음만큼 죽을 듯이 강하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 불어오는, 지나가는, 일상적인 것들이 되어있었다.

 기모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류의 합성섬유와 패딩, 비가 스며들지 않는 원단, 오리털 방한 바지 같은 섬유의 발전에 감사한다.        


2. 음식

 새벽에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오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심하게 배가 고팠다. 처음엔 당연히 배가 고픈 것으로만 생각하고 옆집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꾸역꾸역 먹기에 바빴다. 마감 알바가 장사하고 남은 음식은 모두 정리를 하고 가기 때문에 이곳에 먹을 음식이 없기도 하고 있고 먹어도 된다 하더라도 차갑게 식은 음식이 맛있지도 않을 텐데도 처음 일할 때는 미처 정리하지 않고 간 어묵이나 튀김 같은걸 마구 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뭐 맛있다고 그렇게 먹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정신없이 말이다.

 그런 궁핍하고 배고픈 시절의 추억이란 것은 참 소중하다. 지금도 배고파서 뭘 몰래 먹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될 때면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지만 이해할 수 있다. 불안과 가난과 사랑의 결핍은 시도 때도 없이 배를 고프게 하고 아무거나 주워 먹게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자비심이란 내가 잘나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생활이 좀 더 안정되면서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도시락을 싸 오기도 했고,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 먹기도 했다. 보통은 새벽 알바를 마치고 또 다른 삶의 터전으로 달려가야 하지만 휴일이라 뒷 시간이 좀 더 자유로울 때는 근처 맥도널드에 가서 모닝세트를 사 먹기도 했다.

 진짜 불안할 때는 일을 하기 전에 먹고, 하고 나서 먹기까지 한 적도 있었고, 마음이 안정적일 때는 커피 한 잔만 마시고 빵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진짜 배가 고파서 먹는 적정량을 알게 되었고, 그 이상을 먹고자 할 때는 불안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동안 먹어온 헤아릴 수 없는 초콜릿과 빵과 믹스커피들은 내 불안을 덜어주는 동료이기도 했고, 작별해야 할 애착인형과도 같은 것들이었다. 아직도 가끔 고칼로리 초콜릿바를 아껴 먹으면서 '이제 그만 내 기억의 상자로 가주어야겠어. 그동안 재미있었어...' 인사를 하곤 한다.        


3. 음악

 음악을 틀기 시작한 건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처음에 일 자체도 익숙하지 못하고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것과 실수 없이 일을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과 불안이 심할 때는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 6개월, 1년... 어느 시점인가 15분씩, 30분씩 시간이 줄어가고 힘들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어두운 마음에 보람과 기쁨, 자신감과 감사… 빛나는 마음들이 한 줄기씩 스며들었다.

 어차피 하는 일 해치우는 기분으로 하기보다 매 순간을 더 즐기면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음악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라디오였다. 재미있는 멘트를 하는 라디오를 들으면 시간도 잘 가고 좋았다. 

 마음이 안 좋을 때는 불교방송을 듣기도 했다.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염불 소리가 편안하고 좋게 느껴지는 시기도 있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와 미사곡들도 들었다. 힘 있게 빨리 일을 해야 할 때는 모차르트를 틀었고, 일상적인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선호하는 작곡가는 바흐였다. 특히 내가 일을 마칠 때쯤 흘러나오는 바흐의 평균율을 들을 때면 큰 기쁨이 밀려오곤 했는데, 신해철이 자신의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노래로 '민물장어의 꿈'을 지정했듯이 나는 나의 죽음의 배경 음악으로 바흐의 '평균율'을 생각하곤 했다. 

 '평생 균형을 잡기 위해 애썼던 사람, 아름다운 흙이 되다.'

 묘비명까지 떠올리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한때는 일묵 스님의 동영상 법문을 들었다. 언젠가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처럼 불교가 좋거나 스님이 되려고 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찾는 길을 찾다 보니 그게 불교였고 그러다 보니 스님이 된 거라는 말씀처럼 나도 법문을 들으려고 들었다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질문들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즐겨 듣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수많은 음악과 강의를 들었지만 물소리 때문에 반은 제대로 듣고 반은 흘려듣는 식이었는데, 블루투스 미니 스피커를 연결해서 물소리에도 방해받지 않고 시원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음악이나 소리도, 없으면 불안해서 무조건 트는 것도 집착이니 안들을 때 생기는 불안을 보고 들어서 좋은 마음도 보면서 선택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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