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사마귀, 경비 아저씨들, 택배기사들, 편의점 알바, 맥도널드 라이더......
이들은 혼자서 일하는 대도 전혀 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사람은 혼자가 되려고 해도 될 수 없을 만큼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쳐준 동료들이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수년간 반복적으로 하면서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해 보면 어떨 땐 작은 유리문 사이로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에도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고 어떨 땐 빗방울 소리에도 두려움이 일어나곤 했다. 갑자기 출몰한 바퀴벌레 한 마리에 기겁하고 어느 여름에 등장했던 사마귀 한 마리와는 사투를 벌이기도 했었다.
처음에 바퀴벌레를 만났을 땐 소스라치게 놀랐고 또다시 바퀴벌레가 나타날까 봐 긴장했고 숨어있는 수많은 바퀴벌레까지 상상하며 혐오감을 가졌다면 그 이후의 변화는 어차피 바퀴벌레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거라면 바퀴벌레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꾸고 때려잡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처음엔 엄청 두려운 마음으로 죽이는 데 성공했고, 그 다음번들엔 크게 놀라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때려잡게 되었다. 지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바퀴벌레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바퀴벌레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이 건물에서 소탕을 위해 약을 쳤는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나는 바퀴벌레들 사이에서 나타나기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게 재빠르고 무서운 사람이 왔다는 소문이 났거나, 또는 내가 청소를 깨끗이 함으로써 청정지역이 된 이곳에 더 이상 못살고 지저분한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고 믿기로 했다.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등장했던 사마귀는 내가 본 사마귀 중 가장 큰 놈이었다. 그놈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라 제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하고는 나무로 된 큰 순대 뚜껑으로 일격을 가해 덮쳤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이제 죽었겠지 하고 뚜껑을 드는 순간, 마치 터미네이터가 다시 살아나듯이 다리의 관절을 하나씩 뚝뚝 일으키며 더 커진 느낌으로 반듯하게 일어서서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이때 나는 두려움이 환청과 환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현실의 사마귀는 정말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처럼 철갑의 옷을 입고 나를 공격할 듯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전진했다. 나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이트를 날려서 한방에 제압했다. 그때의 느낌은 내가 먼저 선방하지 않으면 사마귀가 먼저 한방 나를 칠 것만 같았다. 사마귀는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인데 조용히 사마귀 친구를 바깥으로 보내줄 수 없었던 나의 왜곡된 감정이 정말로 이상한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사마귀의 사채를 제거하면서 내 병리적 억압의 슬픔을 느꼈다.
내가 일했던 분식집은 고층빌딩 1층에 있었는데 내가 마감청소를 하는 시간에 일하는 유일한 사람은 건물의 경비아저씨다. 내가 일하는 몇 년의 시간 동안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경비원이 바뀌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남성이었고, 별 말 수 없이 조용히 있는 사람들이 다수였는데, 한 쾌활했던 경비 아저씨는 나를 볼 때마다 '이 건물 사장님 나오셨네.' 하면서 내가 이 건물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이곳에서 나 혼자 일을 하지만 이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힘내세요.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겁니다.'라고 말한 적도 없고,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의 행동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무도 없는 새벽, 분식집에서 매일 더럽혀진 혼돈의 주방 기기들을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질서를 잡는 이 반복적인 노동은 삶을 헤쳐 나가는 섬세한 기술과 마음의 힘을 길러주었다. 그 힘의 크기에 따라 같은 일도 힘들고 불만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고 가뿐하고 상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마음보다 더 구체적인 단어로 감정을, 감정이 일어나는 더 구체적인 단어로 감각을, 감각이 일어나는 더 구체적인 장소를 눈, 코, 입, 귀, 피부 등의 각 신체 기관으로 보면, 우리가 막연하게 ‘짜증 난다. 화난다. 싫다’는 불만족의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이 일어나는 상황을 미리 점검하고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를 하는 것으로 불만족을 만족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섬세한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감각적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는 오류도 수없는 시도와 가능성 사이를 오가는 실수와 반복 속에서 서서히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이리라.
현재 내 삶을 유지하는 삶터로 내가 선택한 이곳에서 힘들어하고 불만을 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느끼는 것도 내 마음이다. ‘오직 마음이 다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유일하게 삶을 헤쳐 나가는 길이다.
마음은 감정이고 감정은 감각이고 감각은 몸과 세상이 만나는 경계에서 일어난다.
내 몸을 깨끗이 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것은 감각의 창을 깨끗이 닦고 또다시 거친 세상을 힘차게 헤쳐 나가게 하는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