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똘똘이랑 스피디하게 일을 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만두를 찔 때 흰 스팀이 올라와서 공간 속에 하얗게 김이 서리는데 주문받고 음식 만들고 포장하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고개를 들어보니 손님 중에 한 분이 만두 김 때문에 동그란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려있었다. 그 손님한테 주문하시겠냐고 물으니 이런 경우에 안경을 벗어서 닦는 것이 보통인데 그 손님은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냥 김이 서린 채로 주문을 했다. 똘똘이와 나는 각자 속으로 이 상황이 웃겼지만 웃음을 참고 일을 했는데 둘 다 너무 웃겨서 손님이 뭘 주문했는지 기억을 못 했고 그 상황이 어떻게 종료됐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나서 둘이서 배를 잡고 주저앉아서 한참을 웃었다.
나의 김밥 싸는 속도와 순대 정리를 하는 기술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이 파트는 한 번 집중해서 글로 정리를 하고 싶다.
하루 열두 시간 분식집에서 일하면서 정말 독특하고 이상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구름이 흘러가고 흐렸다가 맑아지는 하늘처럼 온갖 감정들이 몰려왔다 흩어진다.
눈물을 쏟으며 다시는 그리 웃을 일이 뭐 있겠나 싶었는데 김 서린 안경을 끼고 가만히 서있는 사람 하나에 빵 터져서 이렇게 실컷 웃게 될 줄이야.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으로 의미치료를 창설한 빅터 프랭클은 사람이 살아가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로 '유머'를 꼽으면서 하나의 일화를 소개한다. 수용소에서의 식사는 건더기 거의 없는 묽은 수프어서 배급 담당이 아는 사람일 경우 냄비 바닥에 깔린 감자 같은 덩어리를 하나씩 건져주곤 했는데, 어느 날 자기 동료와 만약 자기들이 풀려나서 어느 백작 부인의 파티에 초대받아갔는데 거기서 이 습관대로 백작 부인에게 '냄비 바닥에 있는 감자 좀 건져주시겠어요?" 할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며 웃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떠오른 이 세 가지 기억의 소환으로 확신에 차 있는 희망과 다음 식사에의 기대와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본다.
딸, 주희랑 밖에서 밥을 먹는데 후식으로 작은 그릇에 담긴 젤리가 나왔다.
네모나게 잘라진 작은 젤리들은 각각의 크기도 양도 어찌나 작은지… 그걸 보고 주희가 한 표현이 나를 기쁨에 반짝이게 했다.
'모자 장수의 티파티에서 모자장수, 토끼, 쥐, 작아진 앨리스, 채셔 고양이가 같이 다 부서진 그릇에다가 담아서 먹을 것만 같은 젤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