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은 휴일이고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퇴근 시간이다. 그러면서도 일상적 항상적 행복을 위한 책을 읽고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목표는 일을 마치고 쉬는 시간만큼 일 자체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말은 쉽지만 실재에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침 출근을 할 때는 밝아오는 태양과 선선해진 바람과 가을 풀벌레 소리에 오늘도 한번 즐겁게 일해보자 힘을 낸다. 녹즙도 마시고 비타민도 챙겨 먹고 좋은 문구도 가슴에 새겨보고 몸과 마음에 행복을 위한 투자를 한다.
이 소중한 무장은 아침 미팅 때 잔소리 같은 지시사항을 들으면서 해제되기 시작해서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기쁘게 일해보려고 노래도 흥얼거려 보고 동료에게 미소도 보내는 등 애를 쓰다가 오후에 러시가 뜨고 처리해야 할 곤란한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는데서 욕을 할 만큼 아침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나고 어떻게든 하루 일과는 마무리된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밤의 품에 안기는 식이 우리들의 일상인 것이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하다.
포인트는 미팅 때 듣게 되는 잔소리, 고객의 컴플레인, 엉망진창인 상황들... 이 어쩔 수 없는 혼돈의 상황에서 얼마나 주체적으로 마음을 지키느냐에 달렸다. 그 혼돈에 같이 휘말려서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이 문제다.
기쁜 노동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조용하고 깨끗한 상황에서 힘 안 들고 운 좋게 지나가는 하루에 있지 않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세상의 혼돈에 맞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이 절실하다.
예전에 교사 친구가 한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말이 떠오른다. 동료 교사들이 하는 말인데 아이들이 집에 가는 뒤통수가 제일 예쁘단다. 부모들이 들으면 경악할 말이지만 내가 아이들과 만날 때 그 말을 들으면서 백 퍼센트 공감했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아침 얼굴만큼 집에 가는 뒤통수도 예뻐야 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만큼 일상적으로도 노동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하니 해치우듯이 일하고 퇴근해선 먹고 자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휴일만을 기다리는 식으로는 안 된다. 휴일에 퇴근 시간에 집착하지 않고 일에서 기쁨을 찾는 만큼 휴일도 퇴근 시간도 더 질 높은 휴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힘이 든 것을 가장 힘들어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은 육체노동이 과거에 하던 일에 비해 지적인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처음에는 단지 1,2년 정도 단기간 아르바이트 정도로 하다가 금방 내가 원하는 예전의 일로 옮겨 갈 거라고 생각하고 할 때에 비해 생각보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러다가 계속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이 가장 두려웠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에 대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왜 해야 하는지, 진짜 하고 싶은 건지, 계속해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건지.. 근본적인 것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육체노동인 일과를 마치고 나면 책을 읽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듣든 피아노를 치든 뭔가 지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야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는데 육체노동에 지쳐서 며칠간 그런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단히 불안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휴일이 되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달려가서 폭식을 하듯이 책을 읽으면서 갈증을 해소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활동이 갖는 의미, 내가 왜 이렇게 목말라하는지 그런 이유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 일과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육체노동의 시간 덕분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그런 소중한 보석들을 캐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계속 존경받는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거나 디자이너로 살았다면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전문 서적이나 읽고 좁고 얕고 가벼운 행복 안에 안주했을지도 모른다.
내 삶은 현재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와 '이미 봄은 지나갔다'와 '지금이 봄이다'가 공존해 있다. 지나간 봄에서 받은 힘을 지금의 봄에 다시 심어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짧은 노동이 아니다. 여가에 집착하지 않는 좋은 노동이다.
-토마스 바셰크,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길고 고되어도 기쁜 노동, 쉼에 집착하지 않는 좋은 노동, 노동과 쉼을 모두 즐거운 것으로 가꾸어 가는 것은 나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임을 가슴에 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