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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19

만두의 성화(聖化)

 

 분식집, 그곳에서의 경험은 글 쓰고 싶은 일화로 넘쳐났다. 

다른 외식 메뉴에 비해서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이라 연령대와 직업이 다양한 손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일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되어주었다. 특별히 분식집 근처에 지체장애인 시설이 있어서 하루에 한 명 이상 지체 장애 손님을 응대해야 했던 상황은 글 쓰고 싶은 소재의 저축에 크게 일조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말과 행동, 그 순수함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경이와 경탄의 순간들! 

 그때에도 별처럼 빛나는 이야기들이 날아가 버릴까 봐 조바심이 나서 바쁜 틈틈이 메모를 해두면서도 하루 열두 시간의 노동과 새벽 알바까지 해서 늘 잠이 아쉬웠던 생활이라 글쓰기는 늘 계획에만 있고 실천은 못한 채로 아쉬움과 불안을 함께 저축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러한 나의 심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토마스 머튼의 글귀를 만나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토마스 머튼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수도원의 생활은 노동과 기도로 글을 쓸 틈이 나지 않았고, 이러다가 정작 원하는 글을 쓰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혔지만, ‘글을 쓰려면 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글을 쓸 때의 힘듦보다 쓰지 못할 때의 힘듦이 더 고통스럽다.

 잠이 간절했던 힘들었던 그 시절, 토마스 머튼의 그런 고민과 성찰을 만나서 위로받았던 것조차 하느님의 돌보심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만두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한 지체장애 남자아이가 있었다. 중. 고등학생 정도쯤 되어 보였다. 그때 교회 집사인 튀김 언니가 튼 음악(성가는 아니었지만 성가를 틀고 싶은 마음이 섞인 성스러운 무드의 음악이었다.)이 크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음악이 클라이맥스를 내달리고 있을 때, 마침 만두가 다 익어서 만두 뚜껑을 열었다. 만두의 흰 김이 앞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무럭무럭 하얗게 피어올랐다. 순간, 그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와! 성스럽다!!"

사실 나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라 느끼고만 있었는데, 그 아이는 큰 소리로 말했다. 

 튀김 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나와 동시에 크게 웃으면서 

 "맞네. 진짜 그렇네…"

 하며 그 아이를 이쁘게 그리고 기쁘게 바라봤다.        


 내가 가졌던 직업 가운데 사람들의 가장 존경받을 수 있었던 직업은 유치원 교사였다. 발도르프 유치원이었는데, 발도르프 교육을 단편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당시의 내 마음이 닿은 한 측면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시각이 일반 교육관에 비해 훨씬 깊다는 것이었다. 즉, 인간의 발달 단계를 탄생으로부터 보는 것이 아니라 생후와 죽음 이후까지의 전체적인 이해로 바라보는 영성적인 측면이다. 이처럼 지향점과 목표가 원대하다 보니 인간적인 한계가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곳에서의 사람들은 대단히 열의가 있었고, 동시에 힘들어하는 강도도 강했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도 심했다.


 한 해의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대우주와 소우주인 인간의 조화와 리듬을 중요시하는 발도르프 교육에서 크리스마스는 1년의 리듬인 축제 중 가장 성대하게 여기는 행사이다.

 당시 내가 있던 곳에서 이런저런 갈등과 잡음이 심한 상황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교사들이 밤늦게 까지 수당도 없는 야근을 당연한 봉사로 여기면서 힘들게 하고 있던 터였다. 우리는 마음속에 불만을 가득 담은 채 높은 천장만큼 큰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이는 화려한 장식들을 달고 있었다. 대표 교사였던 선생님께서 전체 교사들에게 아픈 지적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곳에 예수님이 오실까요?"

 각자 강한 부정적인 에고에 휩싸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의 그 질문만은 어떤 빛나는 크리스마스 장식보다 반짝이면서 일순간 우리 모두의 존재의 핵심을 아프게 찔렀다.    


 분식집이든, 발도르프 유치원이든, 절이든, 교회든… 햇빛이 비추는 곳이든, 어둠이 내린 곳이든, 그 어디서든… 우리는 우리가 자주 듣고 말하는 ‘모든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라는 진실을 감지할 수 있는 맑음을 지녀야 한다.

 발도르프 유치원 교사였을 때 같이 일하고 공부했던 선생님들을 가끔 만나면 지금의 나의 위치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묻곤 한다. 다시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일할 생각은 없느냐고......

 그런 기회가 온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그곳에 다시 가서 이루지 못한 꿈을 통합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다.

 '내일이면 행복했을' 그가 갈 미래의 장소가 아니라,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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