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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19

진정한 힘은 오직 취약한 상태에서 생겨난다

-에필로그


막다른 골목바람
불어와 흩어진 맘
추스를 틈도 없이
또다시 바람
숨이 막힐 듯 바람
산산이 흩어진 맘
추스를 틈도 없이
또다시 바람
세차게 바람

                              -생각의 여름, <골목바람>    

    

 비바람이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지퍼를 목 끝까지 채우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의 여명 속을 달렸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갑작스럽게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 되어 가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당장에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매일 새벽, 어제 영업이 끝난 분식집을 청소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일이야 처음에는 힘든 게 당연하지만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동선으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일이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져 갔다. 문제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원래부터 오토바이를 탔던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연습해서 타기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맑은 날은 레저처럼 즐기기도 했지만 날씨가 궂은날은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큼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오토바이 비 보다 바람에 더 취약다. 보행을 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의 바람이 오토바이를 탈 때는 쇳덩어리로 된 무거운 오토바이와 함께 바람에 떠밀려 휘청거리는 것이 절로 진땀이 솟았다.

 ‘바람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 사각지대는 평지보다 꺼진 지형으로 바람이 전혀 안부는 맑은 날에도 미세한 바람이 불었다. 오토바이가 떠밀려 벽에 부딪힐 정도로 폭풍우가 강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이었다.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두려움 속에서 그 순간을 통과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그때, 몸의 세포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기능했다. 숨을 멈추는 것으로 오토바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집중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이런 소리가 들렸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

 ‘바람의 계곡’을 통과했을 때,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5년간의 새벽 마감 청소를 끝내던 마지막 날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 속을 통과하는 것처럼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던 그 일을 마치던 마지막 날, 문을 잠글 때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다. 마지막 날이니 좀 대충 해버린다거나 좀 더 깔끔하게 더 해주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평소와 똑같이 하는 것을 선택했다. 가스밸브와 조명 등을 점검하고 평소와 똑같이 몸을 숙여서 열쇠로 문을 잠그자마자 이런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이겼다.’

 폭풍우 속에서 들렸던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말과 마지막 날 문을 잠글 때 들렸던 ‘우리가 이겼다’는 말은 누가 한 것일까?

 <내 안에서 홀연히 솟아났다> 거나 <어딘가에서부터 느닷없이 들렸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메시지는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계셨던 증거로 기억한다. 실존적 위기 속에서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며 삶의 전쟁터에 나섰던 내 안의 가장 깊은 나, 가장 크고 위대한 나를 만났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어두운 새벽의 공기 속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숨을 멈춘 채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거룩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하느님, 어디에 계십니까? “

 외쳤던 수많은 날들 속에도 항상 함께 계셨던 하느님을 뜨겁게 추억한다.

 죽을 수도 있었던 바람의 계곡을 수천 번 통과하면서 살아낸 힘으로 소중한 딸을 비롯한  흑수저 젊은이들을 응원한다. 원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좋을 때나 어려울 때도 한결같이 자신을 믿고, 운명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때로는 하찮게 느껴질 때도, 소용없는 일 같을 때도, 의심하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삶을 믿고 의지하면서 계속 살아나가라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폭풍우를 피하고 싶어 한다. 우산이 뒤집어지고 몸을 추스르기 힘들 만큼 강력한 비바람도 그렇고, 매서운 인생의 바람도 그렇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의 봄과 여름의 바람. 그 실크처럼 부드러운 미풍은 머물고 싶고 붙잡고 싶은 바람이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음산한 바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칼날 같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인생의 겨울은 오지 않기를, 나를 피해 가기를 바란다.

 ‘춥다. 추운 건 딱 질색이다. 싫다. 왜 또 폭풍우인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불평불만으로 저항하면 더 고통스럽다. 불고 또 불어오는 찬바람 속에서도 덜 고통스럽기 위한 비결이 있다면 바람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격렬함 속에서 태어났다. 태초에 지구가 생길 때에도 휘몰아치는 격렬한 폭풍 속에서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이 행성 자체가 역동적인 혼돈의 폭풍이다. 이 거대한 폭풍은 재난을 일으키고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을 내포하지만 또한 그러한 폭풍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생명도 있는 것이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눈부신 파란 하늘과 무지개가 뜬다. 비로소 맑음이다.

 폭풍은 어둡고 무서운 것, 적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에게 필요한 강건성의 영역이다.

 생명의 지구에서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것은 혼돈과 격렬함, 충돌을 야기하는 강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불고 또 불어오는 난관과도 같은 삶의 폭풍은 적이 아니다.

 폭풍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 ‘덕분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생계밀착형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정 동안 가장 두려웠던 바람의 계곡을 지나면서 ‘우리가 이겼다’를 외쳤을 때, 그때는 비바람을 이겨내고 내가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비바람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을. 그 ‘우리’에 비바람도 포함되어야 했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바람 불어와 흩어진 맘

추스를 틈도 없이 또다시 바람

숨이 막힐 듯 바람 산산이 흩어진 맘

추스를 틈도 없이 또다시 바람

세차게 바람    


 7년 전, 이 노래가 힘들고 외롭고 가혹하게 느껴지던 그때의 나는 약한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던 뿌리가 얕은 나무였다. 이제 폭풍우가 몰아쳐도 내일의 푸른 하늘과 무지개를 상상하며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게 뿌리가 내리고 굵어진 튼튼한 나무가 되었다.  

 바람을 적에서 친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두려운 바람을 창조의 바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폭풍이 부드러운 바람바라고,

구름이 태양을 바라,

건조한 공기가 비를  가다릴 때,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게 되며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

침묵이 아무리 길어지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꿈서인지 책에서인지 어디에서 보았는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나에게 온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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