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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Feb 22. 2021

빨간 노트

-세상을 건너는 나만의 탐험선

 

새롭게 시작하는 빨간 노트


 새롭게 시작하는 빨간 노트, 이번의 첫페이지는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글을 필사하는 것으로 채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새로운 노트를 시작할 때 마다 첫 페이지에 <Tell me>라고 썼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 속성, 비밀과 같은 것을 나에게 말해달라는 의미로. 내 의지로 성실하게 채워나감과 동시에 자연의 섭리에 나를 열어두는 자세 또한 견지해야 할 중요한 태도이다.


 인용하는 글은 로알드 달의 자전적 단편 ‘행운-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중에서 발췌한 것으로 나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노트쓰기라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역할이 되어 주었다. 특히 로알드 달이 아이디어를 메모한 공책이 빨간색이었다는 부분에서 언젠가부터 집요하게 편집하고 있는 빨간 노트에 대한 관심으로 불씨가 금방 옮겨붙었다.


 '이제 30년도 더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열심히다.

나에게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줄거리를 찾는 일이다.

독특하고 좋은 줄거리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언제 마음속에 멋진 발상이 떠오를지 결코 모르지만,

그런 발상이 떠오르면 양손으로 움켜쥐고 꽉 붙잡아야 한다.

중요한 점은 즉각 메모를 해 두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좋은 줄거리는 꿈과 같다.

꿈에서 깬 즉시 종이에 적어두지 않는다면 아마 잊어버리고 꿈은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별안간 찾아오면 서둘러 연필이나 크레용이나 립스틱이나

뭐든간에 쓸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중에 그 아이디어를 다시 떠오르게 할 단어 몇 개를 끄적인다.

한 단어로 충분할 때도 많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작업실로 직행해 빨간 표지의 오래된 학교 공책에 그 아이디어를 썼다.

공책에는 간단히 ‘단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나는 글쓰기를 진지하게 시작한 뒤로 죽 이 공책을 가지고 있다. 공책은 전부 98페이지다. 내가 직접 세어보았다. 모든 페이지가 흔히 이야기 아이디어라고 불리는 것들로 빽빽하다. 쓸모없는 것도 많다. 그러나 내가 여태까지 쓴 모든 소설과 모든 아동도서는 이 작고 너덜너덜한 빨간 표지 공책에 적힌 서너줄 짜리 메모에서 시작되었다. (…)

공책에 끄적거린 아이디어 중에는 5년이나 어쩌면 10년 동안 사용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좋은 것은 결국 언젠가는 쓰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동도서 또는 단편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가는 실로부터 엮여 나가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쓰면서 점점 더 쌓이고 확장된다. 가장 좋은 것들은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 나온다. 그렇지만 줄거리의 도입부가 없으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 작은 공책이 없다면 나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프루스트의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이 유년의 기억으로 데려가듯이 로알드 달의 빨간 공책은 오랫동안 롤러코스터 같이 굴곡진 인생 길에서 'play와 pause'를 수없이 반복하며 '쓰여지기와 중단하기'와 함께 '믿음과 의심' 사이를 무수히도 반복해오던 내면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집중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동시에 로알드 달의 빨간 공책은 기억 속에 묻혀있던 내 인생의 빨강들과 노트들을 의식의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하는 초대장이 되어 주었다. 

 작가, 화가, 과학자...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에게 메모나 스케치, 수첩이나 노트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분명한 것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음은 나에게 큰 영감을 준 노트들이다.


 먼저 내 친구 솔이의 아이디어 노트이다. 이 친구는 어릴 때 친구로 그림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고, 그때는 나 역시 그 친구와 동등하게 여겨지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서 만난 그 친구는 두꺼운 노트를 들고 다니며 뭐든 꼼꼼하게 기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 노트는 어릴 때의 재기발랄하던 모습이 성장하여 맺은 하나의 열매처럼 상징적인 느낌으로 기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솔이는 세계적인 앱 개발자가 되어 부러움과 거리감을 주면서 더이상 평범하지 않은 특별함을 꽃피워냈다. 어릴 때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창의력이 꽃 피워지거나 멈추는 차이를 아프게 생각하면서 나는 슬쩍 엿보면서 경탄해마지않았던 깨알 같은 메모의 노트를 떠올렸다.


  솔이의 노트와 연장선상에서 나에게 다가온 또 하나의 노트는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보드였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뒤 충격에 빠져서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멍하게 보냈다. 영화가 끝나고, 시작할 때와 같은 봉준호 감독의 시그니처 음악이 울려퍼질 때 무서웠다거나 재미있었다거나 하는 어떤 감정으로도 쉽게 표현되지가 않았다. '책은 도끼가 되어야 한다'던 카프카의 말이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서 오후 내내 영화 속 곳곳에 포진되어있던 미장센과 주제의식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이 들었다. 

 '장르가 봉준호, 봉준호가 장르'라는 말이 실감났고, 배우들의 연기, 배경 음악, 소품 하나 하나의 디테일에 섬세하기 때문에 봉준호와 디테일의 합성어로 '봉테일'이라는 신조어가 있다는 말에도 수긍이 갔다.

 이후에 영화 <기생충>을 만들기 위해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스토리보드 집을 구입하게 되었고, 그 스토리보드의 섬세하고 치열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생충에서 지하에 숨어사는 근세의 서제 스케치  -봉준호 감독


 다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대중적으로는 화가로 알려져있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화가 이전에 과학자, 철학자, 공학자, 연극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는 아주 다양한 열정과 관심사를 작은 노트를 들고다니며 꼬박꼬박 기록하는 습관을 평생 유지, 발전시켰고,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연구자들에게 완성된 그림보다 완성되지 않은 노트 속의 아이디어와 스케치들의 가치를 더 높게 인정받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명성에 비해 작품이 많지 않은 편인데 그 이유가 완성보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발표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비행, 물, 해부학, 예술, 말, 기계, 지질학...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탐험가로의 면모가 가득 담긴 노트들은 장르를 넘나드는 통섭의 시대인 현 인류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데이터를 가진 자가 돈을 버는 이른바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눈만 뜨면 온갖 정보들로 넘쳐나는 월드와이드웹의 물결을 감당해야 한다.

 물살에 휩쓸릴 것인가, 물살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즐길 것인가 중요한 귀로에 놓여있다.

 이 시점에서 내가 선택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고 더 가치롭게 다듬어 가리라 마음 먹는 것은 손으로 쓰고 그리는 아날로그 노트이다. 오랜 세월 쓰고 그려온 노트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서 재표출해 나가는 것으로 나 자신을 알고 세상과 만나는 거점으로 삼을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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