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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고와 탈피

-에필로그

by 오렌


조금은 특별한 나의 꿈 이야기를 20화로 종결하려고 합니다.

1화. '시작하는 글'에서 썼듯이 처음 꿈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의도는, 무분별한 알고리즘과 딥페이크 등이 난무하는 탈진실시대에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펄벅의 장편소설 <대지>의 한 대목, ‘그에게는 아직도 하나 남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대지에 대한 사랑이었다.’라는 문장은 읽다가, 12년간 꾸준히 써오고 있는 '꿈 일기'야 말로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것', '나의 대지'가 아닐까 생각했고, 꿈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폭발하듯이 솟아오른 무의식의 이미지들을 가득 품고, 좋아하지만 하기 싫은 일, 싫어하지만 해야 되는 일, 꿈 꾸지만 잘 안 되는 일 등등 다양하게 조합된 부조리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언젠가 시간이 주어진다면' 도서관에 있는 모든 꿈 관련 책들을 독파해서 이 방대한 꿈의 이미지들이 다 무엇이고, 우리 안에 있는 이 놀라운 세계에 대해 세상에 외쳐야겠다는 큰 포부를 가졌던 적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정신분석, 심리학, 해몽 등 꿈 관련 책들을 읽고 꿈 이미지를 사유하고 감탄했던 그 느낌들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도 온전히 글로 쓸 수 없었고, 어쩌면 쓸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류시화 님의 유명한 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꿈에 대해 쓰고 있지만 온전히 쓸 수 없는 것들에 갇혀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써왔던 다른 브런치 글들에 비해 매화 쓸 때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분투해서 겨우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솔직한 고백을 합니다.


'기고'는 글을 시작하는 것이고, '탈고'는 글을 끝내는 것이지요. 탈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탈피'라는 단어가 연상됩니다. 탈피는 파충류나 곤충류의 동물들이 낡은 껍질을 벗는 성장행위입니다. 동물의 성장행위로써의 탈피처럼 그동안 쓴 글을 마치는 탈고는 작가에게 있어서 낡은 습관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성장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딘가에서 읽은 한 동물학자의 관찰기입니다. 누에고치 안에서 나비가 되려면 체액을 모아서 누에고치의 건조하고 단단한 벽을 체액으로 녹여서 부드럽게 만든 후, 작은 구멍을 내어 그 구멍을 오랜 시간에 걸쳐 힘겹게 통과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나비는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를 비로소 펼치고 아름다운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 갑니다. 이 지루하고 힘든 통과의례가 누에고치의 탈피, 나비의 탄생 과정입니다.


탈피를 관찰하던 동물학자는 한 번은 그 과정이 너무 더디고 나비가 너무 작은 구멍을 통해 힘들게 빠져나오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크게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과학자의 선한 의도와 달리 힘든 탈피 과정 없이 쉽게 껍질을 빠져나온 나비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곧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인간의 감정으로 볼 때 안타까운 그 탈피의 과정은 나비가 다음 단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힘을 비축하고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이지요.


탈피에 성공하지 못한 동물은 죽는다고 합니다. 탈피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영양의 결핍으로 탈피하는 데 필요한 힘이 부족하거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뜻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오는 통과의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들이 탈피를 하면 당장에 몸을 보호할 외피가 없어서 굴 같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자기가 벗은 껍질을 먹는데, 탈피한 껍질 속에 칼슘과 같은 양분이 많이 있어서 새로운 외피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탈고를 하는 이제야 꿈에 대해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쓰고 싶었던 욕망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부라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쏟아내놓고 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 생겼고, 이것이야 말고 동물이 벗어놓은 외피처럼 씹어먹어야 할 자양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외피, 다음을 위해서요.


겨우겨우 써왔던 스무 편의 글들을 텍스트 파일로 초고 원고로 묶어 출력을 하고,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좀 더 탄탄한 버전으로 기획해보려고 합니다. 이제서야 내가 쓰고 싶은 꿈이 아닌, 쓸 수 있는 꿈 이야기의 범위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쓸 수 있는 글을 통과해서, 쓰고 싶은 글로 갈 수 있는 언어의 지도를 갖게된 것 같습니다.


그토록 쓰고 싶었던 놀라운 이미지들을 떠올려 봅니다. 활활 타는 불 속에서 솟아오르는 불사조의 영광과 사나운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을 통과하는 전사의 용기, 하늘과 지하세계를 오가는 헤르메스의 신적인 능력,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까? 이 세상에서는 본 적 없는 크고 선명한 색깔의 꽃과 새들, 눈부시게 맑은 에메랄드 빛 바다, 어느 시대의 글인지, 외계의 글인지 알 수 없는 문자들의 행렬...... 잠에서 깰 때마다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신의 선물들을 기억합니다.


신의 선물을 인간이 활용하는 방법은, 언젠가 시간이 주어지면, 도서관의 모든 책들을 독파하겠다는 교만이 아닌, 이 모든 것을 세상에 외치겠다는 무모함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작에서 끝까지, 단어 하나하나, 한 문장, 한 단락, 한 꼭지, 한 페이지, 한 챕터, 한 권, 틈틈이, 조금씩, 한번 더, 읽고, 메모하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걷고, 쓰고, 고치는...... 낮고, 작고, 겸손한 자세로 가능 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에 한걸음 더 다가간 기분입니다.


비교적 쉽게 잘 써졌던 신변잡기적인 글들과는 달리 아침마다 고뇌에 차게 했던 꿈 이야기를 맺으며, 그 고뇌가 생존에 필요한 힘을 비축하는 성장행위였다는 의미를 새겨봅니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는데 필요한 진정한 용기와 겸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담담히 마침표를 찍으며 문지방을 넘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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