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정신분석을 받고 무의식의 이미지를 폭발적으로 직면했을 때, '사실, 내 꿈은 작가야......'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오랫동안 무의식에 꾹꾹 눌러놓았던 심층적인 소망을 발견한 것이었다.
의식적으로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작가가 되는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고, 생각하는 사람이 작가라는 순수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다. (사실 그게 다지만...)
검색을 했는지, 서점엘 갔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의 작은 노력으로 알게 된 것은 모닝 페이지를 꾸준히 쓰는 것이 일차적으로 창작의 밭 갈기를 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시에 호텔 룸메이드로 고된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새벽 3주 글쓰기를 시도했다. (생존을 다투던 그 시절, 원시적인 생명력이 가득한 그 글들은 '매거진 >3주 글쓰기 근육 만들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차곡차곡 쌓여 가끔 절망에 빠진 나에게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 주고 있다. 한때는 부족한 글이 부끄러워서 공개조차 부담으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자랑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당하다. 이 모습이 그때의 나였으니까. https://brunch.co.kr/magazine/steinerclass
가장 중요한 기억이 막 떠올랐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한 것도 이 일로 인해서였다. 그러니까, 작가의 꿈을 떠올리고나서 취한 행동 세 가지가 이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되었다.
1. 브런치 작가 신청
2. 모닝 페이지쓰기
3.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읽기
앞으로 브런치에 연재했던 매거진과 브런치북들을 정리해서 한 권 한 권 전자책으로 묶으려고 한다. 어두운 창고에 던져둔 글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단어를 고치고, 과도한 형용사와 접속사를 쳐내고, 불필요한 '나는'과 '-것이다.', '-것이다.'가 반복되는 어미를 다양하게 변주시키는 등 정성껏 매무새를 다듬어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판매와 상관없이 내가 쓴 글들, 내 삶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의미를 담아 나를 떠나보내는 하나의 의식으로.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작가가 되는 방법을 몰랐던 그 시절, 모닝 페이지 다음으로 나의 열정의 온도를 올려주었던 책을 만났다. 바로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기 가이드<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다.
추천의 말, 프롤로그, 에필로그, 옮기고 나서 까지를 포함 해서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멈추지 말고 써라',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글쓰기는 육체적인 노동이다', '말하지 말고 보여 주라', 자신을 믿어라', '작가로 살아남아라'......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총 66편의 글들은 한편 한편, 한 문장, 한 문장, 단어 하나, 하나에서부터 심장이 박동했고, 심폐소생술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글들 중 읽을 때마다 심박수를 올려주는 '꿈에 대해 써라'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밤에 꾸는 꿈과 이루고자 하는 소망으로서의 꿈을 연결해보려고 한다.
'어느 날 나는 일요일 저녁반 학생들(대부분이 삼 년 이상 습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이 글을 써서 정말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이죠? 여러분에게는 강력한 창조의 목소리가 있어요. 이 목소리로 당신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드디어 우리가 키워 온 글쓰기의 힘에 형태와 방향을 잡아줄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다시 말한다.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꿈에 대해서 지금부터 5분 동안 써 보세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꿈이 무엇인지 모르며, 아니 꿈이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5분에서 10분 동안 써 보도록 하라. 이때 우리는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다니는 소망과 있는지조차 몰랐던 소망들을 적어야 하는 강요를 받는다. 이 소망들을 글로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소망에 대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라. 적혀 있는 꿈과 소망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도 잡아 두라.
나는 자신에게 계속 물어보았다. "나탈리, 너 소설을 써 보고 싶지 않니?" 그 대답은 분명했다. "아니, 싫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나마 위안을 느꼈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인생의 종점에 서 있는 내 모습이 환영처럼 펼쳐졌다. 쓰레기 같은 글나부랭이 속에 파묻혀 손에는 얼마 되지 않는 마지막 시들을 부여잡고 마지막 숨을 거두며, 누군가에게 그 시를 읽어 달라고 애걸한 내 모습이.
그렇게 예루살렘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때, 시인이자 미스터리 소설가인 내 친구가 내게 지금 여러분이 읽는 이 책을 써 보라고 제안했다. 그때가 5년 전 일이고, 나는 경제적인 면에서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 친구의 제안은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소망을 일깨웠다. 물론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하지만 강박증이 유령처럼 달라붙듯, 우리의 꿈도 계속 앞에서 어른거리는 성질이 있는가 보다. 나는 결국 꿈에 이끌렸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지닌 꿈에 의해 언젠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게 틀린 말이라면 우리는 꿈과 함께 영원히 상상 속을 표류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일단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자신 안에 내재된 창작적인 힘을 허락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 당신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또는 시든, 그것을 쓰는 방향을 잡게 된다. 당신에게는 꿈을 채워 나가게 하는 기본적 연장인 '글쓰기'가 있다. 또 기억할 것이 있다. 이런 식의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당신 안에 숨겨져 있던 은밀한 꿈들(티베트로 떠나고 싶다. 뉴멕시코 주에 태양열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 등과 같은)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절대 당신의 꿈을 회피할 수 없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꿈에 대해 써라>(110-113쪽)
나탈리 골드버그가 꿈을 유령에 비유했듯이 철학자 강신주 선생님은 이루지 못한 꿈은 귀신이라고 표현했다. 정말로 그렇다. 정신분석을 받던 시절, 상담 선생님은 마흔이 넘은 나에게 물어보셨다.
"꿈이 뭐야?"
분석 초기에, 마지막 무렵에, 4년간의 시간 동안 단도직입적으로 두 번을 물어보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 질문의 효과와 소중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루하루 숨통을 조여오듯이 닥쳐오는 카드결제일과 생계에 대한 불안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깊숙이 들어선 숲 속에서 돌아서 나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곤혹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꿈이란 것은 입에 올리기에도 현실과 맞지 않는 명품 같은 것이었다.
꿈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할 때, 상담 선생님은 한심하다는 듯이, 또는 안타깝다는 듯이 긴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그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질문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에게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닌가 한다.
"꿈이 뭐야?"
쉰이 넘은 지금, 나는 소중한 사람을 만나면 물어본다. 그 사람이 스물이든, 마흔이든......
우리의 무의식의 심해, 저 밑바닥에는 아무리 외면하고 망각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꿈의 씨앗이 남아있다. 이루지 못한 꿈은 유령이고 귀신이며, 고통체고 씨앗이다. 발아와 성장을 기다리고 있는 꿈의 씨앗을 바라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