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은 1913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때인 38세 무렵, 자신의 문제로 자가 분석을 하면서 중년의 위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다. 이슬람의 명상법, 불교의 참선, 도교의 단전호흡, 중세 유럽의 연금술 등 다양한 명상법을 발전시켜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이라는 자신의 명상법을 고안하고, 이 명상법을 통한 자기 계발 과정을 개인화(individulization)라고 명명하면서 자신의 심리학 브랜드로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을 창안한다.
칼 융의 적극적 상상은 4단계로 이루어진다.
1. 무의식 초대하기(Invite the unconscious)
조용한 공간에 혼자 고요한 상태로 있는다.
무의식의 한 장면(어떤 사건, 공간, 인물, 소품, 단어 등)을 초대해서 집중한다.
점차 감정을 이입하여 인격화한다.
2. 대화(The Dialogue)
인격화된 자신의 무의식, 즉 꿈에 나타난 대상과 대화를 한다.
자의적으로 판단을 하기보다 무의식의 이미지가 주는 감정을 느끼면서 경청한다.
3. 가치(The Values)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높은 가치를 도출한다.
상상의 과정에서 비윤리적이거나 극단적인 생각으로 기울 수 있으므로 현실에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윤리적인 가치를 부여해서 현실에 맞게 조율하는 과정이다.
4. 의식(The Rituals)
일상생활에 적용할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통찰을 만든다.
적극적 상상은 꿈과는 다르다. 깨어 있는 상태이면서 완전히 깨어있는 것은 아닌, 몽상 상태에서 자아가 내면에 개입해서 문제를 직면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필자의 경우, 매일 아침 꿈을 기록하고 꿈에 대한 느낌이 명료하지 않을 때, 꿈의 메시지가 명료하더라도 의식과의 충돌이 있을 때,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꿈의 연장선에서 적극적 상상을 하면서 도움을 받고 있다. 그 과정을 글로 쓰면 감정이 정화가 되고 치유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년에 시아버지와 시동생이 몇 달 차이로 돌아가셨다. 이혼한 지 십 이년이 넘었으므로 법적, 현실적으로는 더 이상 관련이 없는, 시어버지도 시동생도 아닌 남이다. 전 남편과도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 이혼한 것이 아니기에 나머지 가족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시키지 못한 채로 결별했고, 그런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란 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오랜 세월을 따라다니게 된다.
의식적으로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후회하지 않으며 명료하게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적인, 인간적인 죄책감이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었다. 특히 나를 좋아해 주셨던 시아버지의 상실감이 무척 컷을 거라고 생각된다. 평생 교육자로 올곧게 살아오신 그분은 장손의 이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고, 그 이후로 급격히 노쇄하셔서 치매에 걸리게 되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으로 지내는 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막내아들이 심장마비로 홀연히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치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아시고 충격받아서 건강에 더 문제가 될까 봐 가족 모두가 비밀로 했음에도 그 사실을 아셨는지 아들이 죽고 나서 몇 달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딸을 통해서 아주 가끔 한두 마디 전해 들은 정보로 알게 된 이야기가 무의식에서는 장황한 드라마를 찍었다. 그들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은 그들을 자꾸 꿈에 보이고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했다. 나쁜 느낌의 악몽은 아니지만 모습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다. 한날은 이와 관련한 주제로 적극적 상상을 했다. 다시 꿈에 보인 날, 그분들을 초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생전에 나를 좋아해 주셨던 그분들, 나의 말과 행위로 인해 큰 상처를 받으셨던 그분들과 침묵 속에서 마주했다. 서로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 이후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다. 꿈에서 보이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고, 그 이후로 두 번 꿈에 나왔다.
한 번은 내가 무슨 말을 하자 재미있다는 듯이 아주 밝게 웃어 주셨고, 또 한 번은 이혼 이후 경제적으로는 어렵사리 살고 있는 나에게 내가 꿈꾸는 커다란 창이 있는 좋은 집 한 채를 사주시고, 커다란 황금 원숭이 한 마리를 주셨다. "그냥 있어서 데리고 왔는데, 여기 놔두면 누가 키우지 않겠냐?"는 말씀과 함께. 두 번의 꿈 모두, 그 이전에 꿈을 꾸고 났을 때에 비해 깨었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 마음이 "통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마음을 내면 그 한 마음이 한순간, 전 우주를 관통한다'는 영성가들의 말이 실감 났다.
사후 세계에 대한 책을 읽고 사례를 아무리 많이 본다 한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장엄한 사원에서 세계 최고 영성가의 강의를 듣는다 한들 죽어본 적 없는 산 자가 알 수는 없는 영역이다. 이런 노력도, 꿈의 변화도 어쩌면 한낱 나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이기심의 발로이며 결과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실재 상황과는 무관한. 오직 모를 뿐이다. 오직 모를 뿐인 상황에서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내 마음의 평화를 바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은 적극적 상상이란 자신의 무의식이 만든 창조물을 표면화하여 자신과 접촉할 수 있게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내면의 평정이라는 변화가 대부분 무언가를 할 때가 아니라 그저 이완하고 짐을 내려놓을 때 일어난다고 했다.
꿈을 꾸고, 무의식을 초대하고, 경청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직관적인 통찰을 만드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날뛰는 허상인 감정을 무화시켜 평화로운 침묵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한다. 그 어떤 성공도, 명성도, 부도 누군가의 행복 또는 불행 위에 설 수 없다. 내 세계의 인드라망에 연결된 모든 생명체들의 평화를 빈다.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에서 썼다.
'말은 침묵 속에 가라앉아 망각된다. 그리고 그 망각은 용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언어의 구조 속에 사랑이 짜여 들어 있다는 한 표시이다. 말은 인간이 망각 속에서 용서까지 하도록 인간의 망각 속으로 가라앉는다.' (47쪽)
'침묵 속에서 인간은 다시금 시원적인 것 앞에 서게 된다. 모든 것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다시 새로이 창조될 수 있다. 어느 순간에나 침묵을 통해서 시원적인 것의 곁에 있을 수 있다. 침묵과 결합하면 인간은 침묵의 원초성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원초성에 참여하게 된다. 침묵은 항상 인간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유일한 현상이다. 다른 어떤 원초적 현상도 침묵처럼 그렇게 어느 순간에나 존재하지 않는다.' (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