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Apr 17. 2024

미래로

-kiroro <未来へ (미래로)>


자, 발밑을 봐
이것이 당신의 걸어가는 길
자, 앞을 봐
그것이 당신의 미래

kiroro <未来へ (미래로)>



미래에는

지금 성인이 된 딸이 중학교 때 했던 말을 적어 둔 일기 중 한 페이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주희는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옷차림에 대한 계획을 말했다. 흰 운동화를 신을 건데, 지금 신고 있는 것을 빨아서 신을 것이고, 베이지색 가방을 들고 다닐 건데, 베이지색 가방은 때가 잘 탈 거니까 저렴한 걸로 두 개를 사서 일주일마다 빨아서 들고 다니겠다고 한다. 그리고 베이지 색 가방에는 다리미로 눌러 붙이는 와펜으로 장식을 하겠다고 한다. 주희의 말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새 흰 운동화와 와펜이 붙어있는 비싼 베이지색 가방이 아니라 그 앞을 수식하는 동사였다. 스스로 빨고, 다림질해서 붙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말에서 멋진 고등학생이 될 거란 예감이 든다. 비싼 새것을 원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어두운 갈색 나무 책상 대신 흰색 새 책상을 사게 되면 그 위에 초록색 식물을 키우겠다고 한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대한 원칙도 확실하다. 첫째, 미션스쿨일 것, 둘째, 교복이 예쁠 것, 셋째, 축제가 재미있을 것. 그날 이후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이 페이지를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동안 주희가 말한 것들이 모두 이루어진 것이었다. 입학식 때 신을 흰 운동화와 들고 다닐 가방에 대한 계획, 흰색 책상과 그 위에 초록색 식물까지. 그리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대한 세 가지 조건, 미션스쿨, 예쁜 교복, 재미있는 축제도 모두 다 맞아떨어졌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주희는 "진짜? 아! 소오름."하면서 양손으로 몸을 감싸 안으며 발을 동동 구른다. 주희는 "미래에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자주 했다. "미래에는" 5층 건물을 지어서 1층은 편집샵을 하고, 2층은 옷을 갈아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티커 사진 가게를 하고, 3층은 카페를 하고, 4층은 자기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하고, 5층은 작업실을 하겠다고 한다. 더 재밌는 건 그 5층 건물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차려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게 하겠단다. "미래에는" 유학은 프랑스로 가겠다고 했다가 오로라를 보고 싶어서 북유럽으로 가겠다고 바꾸었다. "미래에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팍팍한 현실을 감내하고 있었으므로 꿈꾸는 아이를 마냥 기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 주희의 말에서 "미래에는"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 아이도 어느새 성인이 되어 현실의 발 밑을 단단하게 밟고 있다. "미래에는"을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미래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희망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발 밑의 과거 눈앞의 현실

과거를 아는 만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한 걸음 세상으로 나아가면 세상도 나에게 한걸음 다가온다. 과거는 단단한 땅을 밟고 선 발 밑에 있고, 미래는 머리 위에, 현실은 눈앞에 있다. 양손에는 흔들흔들 균형을 잡으며 함께 나아갈 친구들이 있다. 링크한 영상은 이십 년 전 큰 유행을 했던 일본 가수 kiroro의 '미래로'라는 노래다. 당시에 일본어 학원에 다녔는데, 시처럼 아름답고 희망적인 이 노래 가사를 프린트해서 일본어 공부 텍스트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kiroro의 맑고 힘찬 음색을 향유하며 어딘가에 있을 꿈과 사랑을 마구마구 그리워했던 청춘의 한 페이지다.



未来へ (미래로) | kiroro




이전 24화 꽃 명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