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롤라장
6학년이 되면서 나는 학교 생활이 너무나 즐거웠다. 조별 프로젝트 방식으로 모든 수업과 과제가 주어졌고, 수업을 마치면 매일 친구들과 모여서 과제를 하고 어디론가 놀러 다녔다. 특히 우리가 자주 갔던 곳은 비둘기 롤라스케이트장이었다.
비둘기 롤라장은 남포동에 있었다. 어두컴컴한 지하 스케이트 장에 들어서면 만국기가 펄럭이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알록달록한 싸이키 조명이 돌아가고 런던 보이스, 모던 토킹, 컬처 클럽의 주옥같은 팝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내 몸속 유흥의 세포들이 슬슬 깨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롤라스케이트를 잘 탔다. 앞으로 가는 것뿐 아니라 뒤로도 갈 수 있었다. 한 발로도 타고, 앉아서도 타고, 다리를 교차시켜서도 탈 수 있었다. 점프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도록 롤라스케이트를 타고나서 집에 가야 되는 사람은 집에 가고 좀 더 놀아도 되는 멤버들은 2차를 갔다. 바로 뮤즈였다.
뮤즈 음악감상실
뮤즈 음악감상실의 시스템은 이러했다. 먼저 돈을 내고 오렌지주스를 시키면 음료와 함께 흰색 메모지를 한 장 줬다. 음악을 신청할 수 있는, 이른바 음악 다방 티켓이었다. 그 티켓에 신청곡을 적어서 DJ박스에 밀어 넣으면 유리 부스 안에 있는 DJ 오빠가 음악을 틀어주었다.
비틀스, 롤링스톤즈, 웸, 아하, 마돈나, 마이클잭슨, 아바, 존 댄버 등등 유명한 옛날 팝송들을 신청하고 들었다. 영어를 잘 몰랐지만 그런 노래를 들으면 내가 좀 더 세련되고 고급지고 멋있어지는 것 같았다.
특히 비틀스를 좋아했던 친구 솔이와 각별하게 친해졌다. 솔이는 남자였다. 나는 여자고.
솔이의 등장은 엄마가 투병 중인 암울한 시절을 온통 핑크빛으로 칠했고, 친구들과 함께도 좋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단둘이만 있고 싶다는 것을 알게된, 지구에서 만난 첫번째 사람이었다. 솔이를 포함한 무리들과 비둘기 롤라장과 뮤즈 음악감상실을 드나들며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 텅 빈 내 마음에 연둣빛 움을 티웠다.
비틀즈
솔이와는 이후로 중학교 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비대면으로 종이 위에서만 만났다. 우리는 데미안과 돈키호테와 에곤 쉴레와 클림트를 이야기하고, 비틀즈를 들었다. 사실 나는 그때 외상 후 스트레스에 의한 난독증으로 그 책들이 안 읽어져서 줄거리를 보고 읽은 척을 했고, 그것도 모르고 내가 문학소녀라고 생각하는 솔이에게 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 한 번에 일고 여덟 장씩 편지를 지치지도 않고 썼다. 필력은 이때 다져진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렇게 편지를 줄기차게 쓰고 또 썼어도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오히려 힘이 솟았다. 힘들었던 것은 단 하나, 솔이의 편지가 너무 짧다고 생각될 때뿐이었다.
카세트테이프
한비야 작가님의 <중국견문록>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있다.
이 책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친구들에게도.
그렇다. 이 말을 그대로 빌려와서 책의 자리에 음악을 넣어본다. 음악은 묵묵히 나의 길을 걷고 있을 때도, 길을 잃고 헤맬 때도 한결 같이 좋은 친구였다. 내가 만든 음악은 아니지만, 나의 길 모퉁이 곳곳에서 늘어지도록 들었던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친구들에게 공유한다. 다른 글에서 나는 지구가 학교라는 비유에 끌린다고 쓴 적이 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노래방 같기도 하다. 노래방 간판은 *블레싱 노래방으로 지어본다.
*blessing 은총 은혜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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