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도서관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마음껏 할 수 없는 제약을 느낄 때 가장 좋은 공간 중 하나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시쳇말로 가성비 갑으로, 돈으로 대접받고 돈이 없으면 위축되기 쉬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쉽게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마다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바람결에 분노를 흩뿌리며 도서관으로 내달렸다.
도서관은 참으로 신기한 공간이다. 마음속 분노가 불처럼 활활 타오를 때나 모든 것이 잠길 듯이 슬픈 바다와 같을 때도 도서관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질서정연해 졌다. 크고 조용한 도서관은 특유의 고요와 침묵으로 내 마음속 혼돈을 받아주었다.
분노의 도서관에 무료 입장해서 분노의 가방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오면 늘 같은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묵직한 자판기 친구가 나를 반긴다. 음료수를 하나 뽑아 마시면서 늘 그 자리에 있는 눈앞의 산을 바라본다. 딱 그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산을, 딱 그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느새 분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도서관의 고요와 질서, 음료수의 청량함과 산의 초록이 내려앉는다.
이건 마법이다. 불같은 분노에도 나를 믿어보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한 나에 대한 선물이다. 게다가 카프카와 들뢰즈를 읽게 된 지금의 도서관은 어린 왕자나 앨리스만 알던 예전과는 달리 친근하고 도전적이기도 하다.
날 새는 줄 모르는, 늦게 배운 도둑 같은 분노의 독서가는 미식가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즐기고 음식에 대한 평을 쓰듯이 육체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으로 심장이 떨릴 만큼 비싼 책들을 줄줄이 사고 읽었다. 눈으로 읽고,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고, 글을 썼다. 내 생각과 같은 글을 쓴 철학자들을 읽으면서 혼자 있어도 수많은 철학자들과 교류하는 기쁨을 느꼈다. 분노의 도서관에서만큼은 나는 학자였다.
중세의 도서관
그날 밤, 우리 동네 분노의 도서관은 웅장한 중세의 도서관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커다랗고 긴 테이블에 법복을 입은 중세학자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앉아 있는 나도 학자 같은 검은 옷을 입고 헤르미온느처럼 긴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 특히 헤르미온느를 좋아하는 나는 꿈에서나마 똑 부러지고 사랑스러운 헤르미온느가 된 것이 무척 행복했다.
내 오른쪽 옆자리의 흰 수염이 긴 학자는 옆면이 황금색으로 된 커다란 책을 읽고 있었고, 왼쪽 옆자리의 두꺼운 안경을 낀 분은 눈부시게 흰 로만 칼라가 달린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차돌같이 크고 단단해 보이는 검은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내 앞에 앉은 또 한 명의 학자는 머리가 새 모양이었는데, 초록빛이 나는 돌판에 뭔가를 새기고 있었다. 새 머리의 학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비한 문서라고 하면서 빛이 나는 초록빛 석판을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식물과 동물, 보석과 인간이 정교한 그림으로 새겨져 있었다.
새머리의 학자는 나에게 끈이 여덟 개 달린 펜을 주었다. 그리고 그 실을 땋으라고 했다. 가는 실들을 굵게 땋아서 무거운 것을 끌어도 결코 끊어지지 않고 무엇이든 끌려오는 굵고 튼튼한 밧줄을 만들라고 했다.
꿈에서 헤르미온느가 된 내가 새머리 학자가 준 펜을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을 때, 내 빨간 오토바이가 불사조로 변해서 날아올랐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신비 도서관
난독증 최대의 불행은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비하, 자기 연민, 자책감이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어느새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느끼는 자기 소외, 자기 부정과 같은 결핍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충분히 공감하는 말이고, 난독증을 극복하고 읽게 된 책은 소경이 눈을 뜬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쁨이기에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고 생각할 만큼 책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입장 또한 견지할 수 있다. 난독증의 고통을 알고 난독증을 극복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부여한 소명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쉽게 쓰는 것이다.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이 쉽고 재미있는데, 도움이 되고 뭔가 울림이 있더라고요. 책을 안 읽으시는 우리 할머니도 읽으시고 재미있어하셨어요. ★★★★★" -멀리서 애독자 김지*
이런 서평을 받는 날을 위해 여덟 개의 끈을 부지런히 땋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