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의 시간> 4화. 침묵이라는 원초적 현상
침묵은 하나의 원초적 현상이다. 말하자면 아무것에도 소급시킬 수 없는 원초적 주어져 있음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대치될 수 없으며, 그 배후에는 창조주 자신 말고는 그것과 연관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침묵은 사랑, 믿음, 죽음, 생명 등과 같은 다른 원초적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본래적으로 자명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침묵은 이미 이 모든 것들보다 앞서 존재했고, 이것들 모두 속에 들어 있다. 침묵은 원초적 현상들 중에서 가장 먼저 태어났다. 침묵은 사랑과 믿음과 죽음 같은 다른 원초적 현상들을 감싸덮고 있으며, 그것들 속에는 말보다는 침묵이,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것이 더 많이 들어 있다. 또한 한 인간 속에도 그가 평생토록 쓸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침묵이 들어있다. 그것이 인간이 드러내는 모든 것을 신비롭게 만든다. 인간 속의 침묵은 그 자신의 삶 저 너머로까지 뻗어나간다. 이 침묵을 통해서 인간은 과거의 세대들 그리고 미래의 세대들과 결합된다.
원초적 현상들 앞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의 위치에 서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는 평소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단순한 파생적 현상들" (괴테)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죽음과도 같다. 우리는 홀로 버려진 채 새로운 시작과 마주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불안해한다. "원초적 현상들이 우리의 감각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 그 원초적 현상들 앞에서 우리는 일종의 두려움을 그리고 불안감까지도 느끼게 된다." (괴테) 따라서 침묵 속에서 인간은 다시금 시원적인 것 앞에 서게 된다. 침묵과 결합하면 인간은 침묵의 원초성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원초성에 참여하게 된다. 침묵은 항상 인간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유일한 현상이다. 다른 어떤 원초적 현상도 침묵처럼 그렇게 어느 순간에나 존재하지 않는다.
성은 인간이 그 어느 때에나 뜻대로 할 수 있는 또 다른 원초적 현상이다. 침묵의 원초적 현상은 오늘날 파괴되어 버린 까닭에 인간은 너무도 지나치게 성의 원초적 현상에 매달린다. 그리하여 인간은 성이 다른 원초적 현상들의 대열 속에서 보호되지 않고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모든 기준을 잃어버리고 그릇되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침묵은 어떤 태고의 것처럼 현대 세계의 소음 속으로 뛰어나와 있다. 죽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태고의 짐승처럼 침묵은 거기 누워 있다. 그 침묵의 넓은 등이 아직 보이기는 하지만, 그 태고의 짐승의 몸 전체가 오늘날의 전반적인 소음의 덤불 속에서 점점 더 깊이 가라앉고 있다. 그 태고의 짐승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침묵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오늘날의 모든 소음은 다만 그 태고의 짐승, 즉 침묵의 드넓은 등에 붙은 벌레들의 울음소리에 불과한 것 같다.
침묵의 세계 | 막스 피카르트 | 2. 침묵이라는 원초적 현상 (23-25쪽) |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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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녕, 낯선 사람 - 커스틴 레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