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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02. 2024

한 소년이 쏘아올린 화살기도

-<원라이너>9화. 



오래전에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주일의 지하철, 십 대 청소년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맞은편에는 딱 보아도 품행이 불량해 보이는,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를 입어서 드러난 팔다리에는 호랭이와 용 문신이 가득 새겨져 있는,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경로석에 어르신들 몇 분이 타고 있었고, 그날따라 나는 왠지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데도 문 입구 쪽에 서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시시덕거리며 시종일관 큰 소리로 떠들고 장난을 치던, 품행이 불량해 보이는 문신남 둘은 단단히 장난을 칠 모의를 하고는 앞의 남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야, 니 어디 가노?"

"성당 갔다가 집에 가는데요."

"성당? 꼴에 성당 다니는 갑네."

"네. 성당 다녀요. 하느님의 집이에요."

"ㅋㅋㅋ...... 하느님의 집이래. 그래. 하느님 잘 계시더나?"

"우리 엄마가 놀리는 사람 보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ㅋㅋㅋ...... 저 새끼 존나 똑똑하네. 지 놀리는 줄 아는 것 봐라."

"바보가 왜 혼자 다녀. 위험한데."

"저 바보 아니에요."

"바보 맞는데. 딱 봐도 바본데....."

"지능이 약간 낮고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바보는 아니에요."

"그게 바보야. 이 바보야!"

"우리 할머니가 사람 놀리는 거 아니라고 했어요."

"와~! 새끼 진짜 재밌네. ㅋㅋㅋㅋ"



그 남자아이는 사실 첫눈에 보기에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지체장애가 있었다. 그런데 또한 첫눈에 보기에도 깔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잘 다려진 흰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에서, 아이의 말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등 주변의 어른으로 부터 잘 배우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사람같아 보였다.



앞의 두 남자가 끊임없이 시시덕거리면서 큰 소리로 그 아이를 놀리는 모습에 내 가슴이 쿵쾅거렸고,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과 괜히 끼어들었다가 심심해서 먹잇감을 찾고 있는 저 양아치들한테 괜한 봉변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두근거리는 가슴 속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말을 뱉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옆 칸으로 건너가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고, 한두 마디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던 그 양아치 노무 새끼들의 놀림은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경로석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은 듣고 있으면서도 모른 채 하는 건지, 아예 귀가 어두워서 안 들리는 건지 딴 세상 사람들처럼 앞만 보고 앉아 있었다.



딴 세상 사람 같아 보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두려움에 쩔어서 포커페이스를 하고는 창문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힐긋거릴 뿐이었다.



지체장애가 있는 그 아이와 다름없이 그 상황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는, 투명 망토를 입고 눈에 안 보이게 변장을 하고서는 날라차기로 저 양아치들의 비열하게 킥킥거리는 면상에 하이킥을 날리며 한방에 제압하는 공상으로 도피하고 있던 찰나였다.



"임마, 니 억수로 재미있네. 형아들하고 놀자. 일로 와봐."

"형아들이 개재미있는거 갈켜줄께."

"싫어요.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이 말 걸면 대꾸하지 말고,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와~! 새끼 봐라. 그렇다면 우리가 나쁜 사람? 존나 짱나네. 이 형아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느그 하느님한테 물어봐. 이 존만한 새끼야."

"그래, 느그 하느님 데리고 와 보라고. 이 병신 새끼야."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양아치들은 갑자기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면서 급발진했고, 내 심장 박동도 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치솟고 있었다. 뒤돌아서서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흘깃거리던 나는 그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만들 하세요! 어린 학생한테 뭣들 하는 겁니까?"

말이 입술에서 터져 나오려고 하는 직전이었다.

그때 지하철 안에 쩌렁쩌렁하게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느님,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다못한 아이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외친 것이었다.

진땀을 흘리면서,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듯이 부르르 떨면서 외친, 천둥과 같은 아이의 목소리에 투명인간으로 정신이 분열되어 있던 나를 포함한 지하철 안에 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 시선을 모으게 되었고, 한순간 시공간이 멈춘듯한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양아치들은 둘이 눈짓을 하더니 정차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쥐새끼들처럼 쪼르르 빠져나갔다.

 


화살기도란 말 그대로 활을 쏘듯이 쏘아 올리는 기도를 말한다. 아무 때나, 정해진 형식 없이, 그때그때 느낌대로, 원함대로, 간단하게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듯이, 기도하는 것으로 하느님께 화살처럼 직통으로 날아간다고 해서 화살기도라고 한다.



누군가는 하느님은 없다고 하고, 나약한 인간이 살기 위해 상정해 논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그 위격에 대해 상세하게 분류하며 너희는 모르는 높으시고 거룩하신 분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그때 그 지하철에서 장애를 가진 소년이 외친 한 마디의 절규, 그 화살기도가 분명히 하느님께 전해졌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가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할 때, 그 소년이 외쳤던 화살기도를 떠올린다.


하느님, 이럴 때 저는 어떻게해야 합니까?



지체장애 소년이 가르쳐준 화살기도로

과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현재에서 오롯이 살아남고,

희망이라는 이름의 미래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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