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놀이터> 12화.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는 1895년 작품 <나무를 심은 사람>을 통해 "오래전부터 나는 이 세계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라는 자신의 말대로 자연을 무대로 영감을 얻어 힘 있고 서정성이 풍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는 데 성공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장 지오노가 프랑스의 오트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만난 한 특별한 사람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문학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혼자 살면서 여러 해에 걸쳐 끊임없이 나무를 심고 있는 양치기다. 그는 묵묵히 해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통해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자신의 존재 이유와 고독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근사한 방법을 발견한다.
양치기는 조그만 자루를 가지고 와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탁자 위에 쏟아 놓았다. 그는 도토리 하나하나를 아주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골라 놓았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그 일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고 나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 개씩 세어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는 도토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중에서도 작은 것이나 금이 간 것들을 다시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상태가 완벽한 도토리가 100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24-25쪽)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도토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내가 끈질기게 물어보자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다. 그리고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는 들쥐나 산토끼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신의 뜻에 따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29-30쪽)
그는 흔들리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계속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열 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나보다, 엘제아르 부피에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말문이 막혔다 엘제아르 부피에도 말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말없이 숲 속을 거닐며 하루를 보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 장비도 갖추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0-41쪽)
오래전에 읽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심연 깊은 곳에 한 알의 도토리로 가라앉아 있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막막한 어느 저녁, 의식 위로 떠올랐다.
다이소로 달려가서 무늬가 없는 색깔 마스킹 테이프를 사서는 조금씩 손으로 뜯었다. 나무 합판에 마스킹 테이프 조각 하나를 붙이고 사진 한 컷을 찍는 행위를 수차례 반복해서 나무 한 그루를 만들었다.
언젠가 주워둔 열한 개의 도토리를 출연시켜 즉흥적인 스톱모션이 만들어졌다.
암울한 공기 속에서 내가 만든 영상을 보는 단 한 명의 관객이 되어 내 안의 배우에게 피드백을 했다.
나에게 남아 있는 성한 도토리를 발굴해서 심고 가꾸어 튼실한 한 그루의 참나무로 키워내자고.
그러자, '한 그루를 시작으로 생명체가 들끓는 피톤치드 가득한 참나무 숲을 만들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도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