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놀이터> 13화.
오늘은 팥빙수 스톱모션을 가지고 왔다.
팥빙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어떤 에피소드를 다룰지 선택 장애가 올만큼 수많은 팥빙수들이 스쳐 지나간다.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는 빙수 사진을 찾으려고 날짜 순으로 스크롤해 내려가면서 최근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먹고 마셔온 빙수와 음료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물론 찍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참 많이도 먹었구나 싶다.
왼쪽의 스텐 컵 얼음 음료는 피자집에서 제공된 것인데, 셀프 무한 리필 서비스라 젊은 층에게 어필하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피자를 먹는 동안 몇 번이고 얼음 음료를 리필해 가는데, 나는 한 잔도 다 못 마셨다.
오른쪽의 뻥튀기 과자와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은 어떤 식당의 후식이었다. 저 아이스크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학교 때 학교 앞 문구점에서 뻥튀기 과자에 아이스크림을 짜서 샌드위치 모양으로 만들어 파는 것을 먹어본 것이 처음이었고, 그 맛이라는 것은 그동안 먹어본 쭈쭈바, 쌍쌍바, 누가바, 메로나, 빵빠레, 부라보콘, 서주 아이스주 얼린 것, 그 어떤 시제품과도 비교불가한 천국의 맛이었기에 한 번 먹어본 이후로 하교 시간마다 줄기차게 사 먹었던 바로 그 아이스크림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뻥튀기 과자랑 먹는 것이 맛있었지만, 지금은 과자보다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넣어서 아포가토로 먹는 것이 더 좋았다.
올해 먹은 빙수 사진을 보면서 좀 놀랐던 것은 바로 팥과 인절미가 든 빙수나 녹차 빙수 사진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빙수도 유행이 있고 하니 그런가 생각도 했지만, 확실히 입맛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과일과 젤리, 연유가 토핑 된 화려한 빙수보다 오리지널 한 팥빙수가 좋아졌다.
스물아홉 여름, 윤종신의 팥빙수가 유행이었고, 당시에 합정에 있는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개인 홈페이지 '오렌닷컴'을 운영하고 있었고, 회사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친한 동료 몇몇이 알게 되었다. 싸이월드처럼 메인 페이지에 배경 음악을 걸어놓았는데, 그 해 여름 배경 음악으로 윤종신의 팥빙수를 깔아놓았고, 덕분에 회사 동료들이 팥빙수 먹으러 가자고 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팥빙수를 먹으러 다녔던 생각이 난다. 술도 안 먹었는데 길에서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고성방가를 하고 말이다.
참,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가 딱인데, 표현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아서 '정말 좋아'로 바뀌었다. 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다. 예술에서의 시적 허용도 모르는 심사위원들이라니!
어, 어, 얼음과자 맛있다고
한 개 두 개 먹으면 이가 시려요
어, 어, 얼음과자 맛있다고
세 개 네 개 먹으면 배가 아파요
배가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우리 엄마 얼굴에 주름이 가요
어릴 때 배웠던 노래다.
한때는 여름만 되면 냉동실에 얼음을 얼리고, 편의점에서 얼음컵을 사고, 여름이면 찬 음료를 먹는 것이 당연했는데, 어느샌가 여름에도 따뜻한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뜨끈한 탕을 먹고, 뜨끈한 탕에 들어가고 땀을 흘리면서 시원~하다! 고 하는 어른들이 이해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은 멀찌감치 물러나고, 뜨끈함이 주는 시원함과 개운함의 참맛을 아는, 누군가의 어른이 되었다.
올여름에 사 먹은 중에 가장 반가웠던 음료는 다름 아닌 쌈밥집에서 나온 숭늉이었다.
나이 타령 안 하고 사는 것이 하나의 신념이기도 하지만, 나이 들수록 몸이든 마음이든 부대끼지 않고 편안한 게 제일이다 싶은 것도 또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 때, 젤라또 원 없이 먹는 황혼의 로마 여행을 꿈꾸었으나, 지금 여기서 쌈밥 먹고 숭늉 마시면서 속풀이 중이다.
팥빙수 스톱모션 가지고 와서 '그중에 제일은 숭늉'이라는 결론으로 오늘 이야기를 마친다.
팥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