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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27. 2024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며

-<사랑의 학교> 12화. 무지개 유치원






발도르프 유치원은 아름다운 환경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자연  숲 속 유치원 같은 이미지에 플라스틱이 아닌 나무로 만든 블록이나 천으로 만든 발도르프 인형, 유기농 먹거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능하면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교사들의 예술적인 감각의 계발과 기술의 연마로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아가 견고하게 형성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일수록 이후에 자아가 되는 힘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런 이론을 공부하고 실습을 통해 모든 기술과 예술적인 감각을 갈고닦는 훈련 기간은 매우 힘들기도 했고, 이전의 직업과 삶에서 느껴보지 못한 성장의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설거지, 청소 등의 집안일로부터 시작해서 바느질, 뜨개질, 목공, 원예, 페인팅 등의 활동을 통해 신체의 성장 발달을 돕고, 매일 들려주는 이야기와 시, 노래와 춤을 통해 영혼을 기쁘고 강하게 한다고 믿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난이도 극상의 구간은 결국 사람이었다.

기본적인 자질을 갖춘 후 최종적으로 교사의 자질을 논하는 상황에서


 교사인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마지막 관문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했고, 한편으로는 불편한 지점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를 판단하고 자격을 부여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에로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심사위원의 자질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었고, *전횡이라는 단어도 돌아다녔다.

(*전횡 :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휘두름)



영국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오랜 기간 공부와 실습을 마치고 유아교사 자격 디플롬을 취득한 원장 선생님께 훈련을 받으면서 방학마다 현지의 선생님들을 초빙해서 특강을 받고, 그렇게 해서 인연이 된 선생님들이 계신 영국 발도르프 유치원에 견학을 가는 등의 과정을 수년에 걸쳐 밟았다. 그 수년의 시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도르프 교사 지망생들이 동료 교사로 일했고, 각각 나름의 이유로 힘듦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나중에는 누구누구도 '나가떨어졌다'는 식의 표현이 공공연히 사용되었고, 그렇게 다들 못 견디고 나가는데 끝까지 살아남아서 디플롬을 취득한 내가 승리자인 것처럼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후에 유치원이 속해있던 학교가 와해되면서 학교 학부모이기도 했던 나는 유치원을 나오는 것으로 결정했고, 이때 발도르프 교육 관련한 권위가 있는 분이 특강을 하셨는데, 그 내용 때문에 큰 갈등과 고통을 받았다. 내용인즉, 유치원 아이들과 교사는 영적으로 긴밀한 연결이 되어 있는데, 교사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그만두는 일은 아이들에게 매우 좋지 않으며 영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으로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아주 오래된 일이고 굳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짚고 싶지 않은 면도 있었지만, 한 번은 나의 언어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싶었다. 최근에 수학자 허준이 교수의 말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데, 그중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의미와 무의미의 폭력'이라는 말이다.



선함과 예술과 천사와 모든 좋고 아름다운 것이 집결되어 있어 마치 천국의 샘플을 보여주는 듯했던 그곳, 그런 분위기 때문에 종교 단체 같다는 비판도 들어야 했던 곳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몸이 안 좋은 교사에게 책임감이 없는 교사, 자아가 약한 교사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높은 가치를 들이대고,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 새벽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없이 일해야 했고, 그 조차도 자신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강도 높은 자아를 요구했던, 근무조건이 한없이 열악했던 그곳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상처받고 나가는 동안, 마지막 1인, 최후의 승자로 살아남은 나는 강도 높은 자아의 소유자가 아니라, 어쩌면 동료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의미의 폭력을 감내해 가며, 맷집 좋게 버텨낸 부끄러운 챔피언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미를 강요했던 사람들, 그 의미를 추종했던 사람들, 지금은 단절된 그들은 지금, 그때 그 시절을 어떻게 복기하고 있을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도 인내하며 습득한 기술로 밥벌이를 하고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삶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에 모두들 감동하고 감탄하고 감사하며 배우고 익힌 아름다움이 퇴색되고 변질되기 시작했던 지점을 돌아본다. 자아를 논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발도르프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환경으로서 반듯한 자아를 가진 성인이어야 한다는 자격을 논하면서


너는 과연 그런 사람인가?

나를 그런 잣대로 판단하는 너는 또 과연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반목이 생기면서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태양의 시기,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공동체가 와해되었는데, 원인에 대해 나를 비롯한, 그때 구성원들의 노력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이상은 없다 싶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만큼, 거기 까지가 우리가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옛사람들은 저녁을 먹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해야 했다. 생존이 걸린 공동의 목적을 향해 싸우다가 누군가가 전사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동료의 희생으로 살아남아 저녁감을 성공적으로 획득하고, 가죽을 벗기고 불에 구워서 배를 불렸다.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추위를 견디고, 뼈에 구멍을 내어 악기로 사용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용감하게 죽어간 동료를 추모했다. 삶과 죽음이 합쳐진 모두가 아름다움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의 학문적 배경이 되는 인지학에서 행성에 대한 공부를 한다. 우리가 가야 할 다음 행성, 미래는 목성이라고 한다. 목성의 핵심적인 가치관은 공동체다. 그러나 목성은 '가야 할 곳'이지 '지금, 여기'가 아니다. '그곳에 가려면' 숱하게 시도하고, 인내하고, 싸우고, 애쓰고, 노력하며, 분투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았던 아름다움을 함께 누릴 만큼 성숙하고 성장해야만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것이 가정이든, 일터든, 누구나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꾼다. 그것이 가능해지기 위해 바르게 선 개인, 독립적인 개인들의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한 형태의 의존인 도움과 번영이 가능하다.





조용필 | 우주여행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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