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틱> 13화.
신들의 사자, 영혼의 안내자, 전령과 통역자의 보호자, 여행과 길의 신, 목자의 신...
지금까지 보아온 다채로운 헤르메스에 대한 성격 중 오늘 소개할 약탈과 사기의 신이라는 성격은 쉽게 이해가지 않았는데, 역시 헤르메스학의 권위자 롬바흐의 설명으로 이해에 다가갈 수 있었다.
가축 떼의 시초를 보유한 자는 그다음의 것을 걱정할 필요가 거의 없다. 하지만 가축 떼가 재산의 시초요 유일한 원천인 곳에서 인간은 어떻게 한 가축 떼의 시초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약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숫양 도둑은 유목문화의 한 근본형상이다. 그리고 이 문화를 가져다준 자, 이 문화의 발명자로서 등장하는 신은 숫양 도둑으로서도 등장해야만 한다. 그가 숫양을 단지 "나르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고 약탈한다는 것은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그는 숫양 도둑이다. 그래서 헤르메스는 오랫동안 숫양을 나르는 자로서 나타난다. 후대에 그의 약탈이 도와주는 행위로 간주되는 것은 사기의 신에게 특징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옳지 않은가?
어디서나 그런 것처럼 여기서도 새로운 한 문화단계의 발명은 인류의 기억 속에 한 신으로서 보존되어 있다. 그 이전에는 그 가능성을 알 수 없었던 한 현존재적 단계를 획득하려면 결국에는 초인적인 통찰과 힘도 필요하다. 가축 떼가 생기기 이전에는 그것의 결핍도 없었다. 바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바퀴와 수레에 대한 욕구도 없었다. 새로운 각 문화단계는 그것에 대한 욕구가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차원으로서 자리 잡는다. 문화의 진행을 욕구 구조로부터 설명할 수는 없다. 문화의 근원적 건립은 그 성과와 더불어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도 발명해야만 하는 그러한 발명이다. 한 발명과 현존재 얼개에서 이 발명이 차지할 수 있는 의미의 자리의 같은 근원적 산출은 신적이라고 이해되는 것 외에는 달리 이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현존재적 해석의 하늘에 신의 모습으로 들어서게 된다.
목자의 신도 마찬가지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근본의미들이 그와 더불어 등장한다. 약탈이 그 일례이다. 약탈은 권리의 원천이 된다.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약탈한 것뿐이다. 그래서 유목문화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약탈이 허용될 뿐 아니라 요구되기까지 한다. 신부 약탈만이 혼인의 권리를 부여한다. 마찬가지로 많은 유목민족의 풍습에 의하면 신랑이 결혼식 하객들을 모욕하지 않으려면 결혼식 성찬은 그가 약탈해 온 것이어야 한다. 사 온 것은 다시 팔 수도 있다. 하지만 약탈한 것은 선사될 수 있을 뿐이다. 약탈한 것이 그 취득자와 본질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획득한 것이 아닌가!
헤르메스는 약탈과 도둑질의 신이다. 약탈과 사기, 도둑질과 간계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지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 일방적인 문화 형태 내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에게 타당한 권리 원천들 외에는 다른 권리 원천들을 더 이상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구입"되면 그 가치를 잃어버리며 "질서"란 심층적으로는 사물들의 본질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묻혀 버린 한 근본경험이다. 헤르메스는 이 중요한 사태연관들에 관한 기억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는 신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를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주(主)"라고 칭한다.
헤르메스는 모든 도둑의 우두머리로 통한다. 그는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 일 때 벌써 그의 이복형제 아폴론의 소들을 모두 훔쳤을 뿐 아니라, 아폴론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의 활과 화살통을 훔치는 놀랄 만한 일을 행하지 않았던가! 아폴론조차도 한 방 얻어맞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포복절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는 메시지는 이 뛰어난 솜씨는 모든 비난을 초월한다는 것, 그리고 뛰어난 솜씨로 행해진 일은 또한 허용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것이 그것을 할 수 있는 자에게는 허용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헤르메스의 근본진리로 집약되는 진리들이다.
아폴론적인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헤르메스적인 것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괴테는 <파우스트> 제2부에서 헤르메스에 대해 이렇게 읊는다.
이렇듯 그지없이 민첩한 아이는,
도둑과 악당,
그리고 이익을 노리는 자들 모두에게도,
자기가 영원히 호의적인 신이라는 것을
지극히 교묘한 솜씨로
곧 증명했지요.
이 글은 H. 롬바흐 지음. 전동진 옮김. 서광사.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 2장. 헤르메스 3. 약탈과 사기의 신 (62-65쪽)이다.
이 연재 브런치북 <헤르메틱>은 헤르메틱에 대한 필사로 이어가면서 헤르메틱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꾼 수많은 꿈들 중 유일하게 보인 신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헤르메스라는 키워드로 찾아 헤매면서 헤르메틱이라는 정신적 지향, 작가적 고향에 도달했다.
헤르메틱은 어둠 속에서의 비상이다. 헤르메스적 근본 경험은 붕괴와 근원적 도약, 발견, 건너감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끝까지 살아남으며, 스스로 힘을 갖는 존재 방식이다.
헤르메틱에 대해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는 H. 롬바흐의 저서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의 내용을 필사. 요약하는 것으로 '존재의 헤르메틱', '예술 작품의 헤르메틱'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 정리본이 차후에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든 그 뼈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