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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Sep 01. 2024

모든 것들과의 화해

-<삭의 시간> 18화.




참사람 부족은 목소리란 말을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말은 마음이나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해 말을 하면 사소하고 불필요한 대화에 빠져들기 쉬우며, 정신적인 대화로부터는 아득히 멀어진다. 목소리는 노래와 축제와 치료를 위해 있는 것이다.



참사람 부족은 내가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다. 내 마음이나 머릿속에 아직도 감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정신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들과 화해해야만 했다. 참사람 부족이 하는 것처럼 내 마음속의 내용물을 낱낱이 다 드러낼 수 있어야만 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을 결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남에게 감춰야 할 거짓과 상처와 슬픔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어떤가. 나 자신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모두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남에게 수많은 상처를 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나도 이들 원주민처럼 내 마음속을 낱낱이 드러내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해야만 했다.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지나간 일들로부터 배워야만 했다. 내가 남을 받아들이고 남한테 진실해지고 남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먼저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한테 진실해지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참사람 부족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8.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97-99쪽)

<무탄트 메시지>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이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말로 모건 지음 | 류시화 옮김
정신세계사





하루 종일 하는 말과 글, 문자나 카톡을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한 말이 아닌 말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필사하고 묵상하면서 '꼭 필요한 말이 아닌 불필요한 말을, 그것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왜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를 이 책의 저자 말로 모건은 이러한 극단적인 예를 든다.

'회사에서 공금을 횡령하고, 세금을 속이고,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그런 곳에선 서로의 마음을 읽게 내버려 둘 리가 없다'라고. 한마디로 우리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대다수는 나 자신과 세상을 속이기 위해서라는 것이.



각자 자신이 살아온 세상, 경험, 프로그램, 역사, DNA... 모든 것으로의 영향으로 형성된 각자 다른 형태의 본성과 그에 따른 다른 형태의 거짓과 진실을 품고 살아간다.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서 잡초를 뽑아내고,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고, 사과 상자에서 상한 사과를 골라내는 것으로 다른 성한 사과들의 선도를 더 오래 보존하듯이, 생존을 위해 형성된 거짓의 껍질을 의식하는 것으로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무런 일도 없는데 벌떡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고 먹을 게 없나' 뒤지고, 갑자기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나' 찾아보고, '누가 댓글을 달았나' 확인하고, 단기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재미있고 좋은 사람을 떠올려 무슨 말이라도 생각해 내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운 좋게 그 일들이 성사가 되면 '즐거운 하루'였다 생각하고, 거절당하면 수치심을 느끼며 '이런 일로 나의 가치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라며 심기일전용 운동이나 독서에 매진한다.



음식을 먹을 때만을 제외하고는 몸에 뭔가가 부딪히기만 해도 도주 운동을 하는 짚신벌레처럼,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불안해하며 붙잡을 것을 찾는다. '거짓말을 멈추고 조용해져야 한다'는 글을 수백 번도 쓰고, 목이 쉬도록 말해놓고 말이다. 불편한 진실에 동의하고 깊이 반성할 수밖에 없다. 회개하고 동의하고 감사하면서, 퇴행하지  것이 성장이고 진화다. 벌거벗는 수치심을 견디면서 나아가는 것만이 생명의 길이다.





댓글 미사용

연재브런치북 <삭의 시간>은 침묵에 대한 내용이니만큼 댓글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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