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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Oct 22. 2024

완벽한 날들

-<원라이너> 최종화.




'원라이너'라는 작명은 어느 호텔의 27층 복도에서 시작되었다. 수년 전 나는 호텔 룸메이드로 일했다. 상황적으로 그 일이 꼭 필요해서였고, 심리적으로는 온전히 그 일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일치하는 하루의 짧은 순간들에서 충만한 희열을 맛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은 '내가 왜 여기에 있나?', '나는 너희들과 달라.',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언젠가는'... 의식은 끝없는 질문과 결심으로 가득찼고, 현실 부정과 저항은 초현실적인 꿈과 상상으로 분열되어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엔디'나 <노예 12년>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으로 빙의되거나, 매일 해야하는 열한 개의 룸 정비 일에 '시지프스 ROOM11'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을 부여하거나,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그럴듯한 말을 빌려오고,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서랍에 든, 정비해야 할 빨간 성경책을 몰래 읽으며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소명을 깨달으려고 했고, 그 곳은 존재의 감옥이 되어 혁명과 해방을 꿈꾸게 했다.



호텔에서의 일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업무의 반복되는 루틴이 특징이지만, 작은 디테일들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살아있는 생물 같이 여겨질 정도로 다이나믹했다. 특히 진상 고객을 만날 때나 폭탄 방(지저분하게 사용한 방을 이렇게 불렀다)을 정비할 때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럴때면 스캐쥴 시트 뒷면에 메모를 했다. 업무 중에 하는 메모였기에 한 줄로 간략하게 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원라이너'가 되었다. 당시에 했던 메모 중 생각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믿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2727호 프랑스 남자

-복도를 가득 채운 소나티네와 인형같이 예뻤던 발레리나 소녀

-야옹이 형과 데미안 바닷가,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서열 1위가 해준 말, 호랑이가 쫓아와도 끝까지 하라

-파인애플, 바나나, 석류, 영희가 준 과일 바구니로 시를 짓다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양말 한 켤레의 은밀한 비밀

-스웨덴 노부부의 땡큐레터

-노숙인의 DNA

이렇게 메모해 둔 '원라이너'를 밑천 삼아 쉬는 날 글을 썼고, 이 중 몇몇 글은 공모전에 응모해서 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삶 속에서 겪은 짜증과 격노, 기대와 좌절, 은혜와 감사, 순간의 감정들을 기억해서 기록하는 즐거움과 만족감은 격렬한 노동 뒤 시원한 샤워나 스스로에게 주는 맛있는 디저트와 같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나는 53층에 있는 어느 사무실로 찾아갔다. 몇 가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했고, 곧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무척 기뻤다. 그곳은 하우스 키핑 사무실, 즉 룸 메이드를 뽑는 곳이었다. 수년 전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가는 동굴에 우연히 떨어지듯이 도착한 호텔 지하에서 혼돈으로 분열되어 환상을 키웠다면, 수년 후인 지금의 나는 호텔 룸 정비 일인 메이드 일을 내 삶을 떠받치는 신성한 일터로, 내 삶에 대한 책임으로 스스로 선택했다. 아무런 갈등없이. 얼마 전, 책 출간 기념으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떤 뒤에 취업 소식을 전했을 때, 친구로부터 영화 링크 하나가 날아왔다. 제목은 <퍼펙트 데이즈>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내 생각이 나서 보낸다고 하면서.



영화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면서 놀라울 정도로 내 인생과 싱크가 높아서 절로 몰입이 되었다. 게다가 야쿠쇼 코지 주연에 빔 벤더스 감독이다. 내가 좋아하는 빔 벤더스 감독이 나의 새로운 시작 앞에 나를 위해서 만들어 준 영화라고 착각이 들 만큼 깊숙이 와 닿았다. 오늘 이 글에서 영화 줄거리나 감상평을 쓰지는 않으려고 한다. 워낙 좋은 영화라 좋은 리뷰도 많을 것이고, 굳이 쓰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영화가 새롭게 시작될 나의 완벽한 나날에 축복을 더해주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언젠가는' 그 감옥같은 노동에서 벗어나 누리게 될 근사한 작가의 삶을 꿈꾸었다. 당시의 내가 꿈꾸었던 근사한 작가의 삶이란 하루키처럼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바닷가를 달린다든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몽마르뜨를 산책하고 노천카페에서 노트북을 켜서 짧은 소설을 쓰고, 여행을 다니면서 전시회와 음악회를 보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며 글감을 생각하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잡지의 한 페이지처럼, 비주얼적으로 폼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멋진 삶이었다. 



'언젠가는' 거친 감정을 가진 메이드 동료들에게서 벗어나 섬세한 감정을 가진 멋진 작가 동료들을 사귀고 그들의 멋진 취향을 배우고 닮아가고, 남루한 내 삶을 벗어나 우아하고 근사한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꿈을 꾸었다. '언젠가는'이라는 병이 낫고난 지금, '언젠가는'이라는 환상이 꺼지고 난 지금, 나는 명료한 현실과 마주했다. 더 이상 거창한 혁명을, 해방을, 구원을, 환상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를 보다 철저히, 보다 기쁘게 살아가고자 한다.



벗어나고 싶었던 환경,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동료, 나의 처지, 입장, 회피하고 싶었던 것들, 꿈으로의 도피, 글로의 은둔, 모든 날들의 기쁨과 슬픔, 상실과 극복, 오해와 이해, 자비와 연민... 그 모든 감정과 노동과 땀, 존재의 감옥을 벗어나고자 했던 처절한 노력과 외로움, 거짓말 조차... 어느 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는 것, 모든 날들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이란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되지도, 성공과 실패로 양분되지도 않는, 수많은 다층적 레이어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환상을 꺼뜨리고, 실재를 마주하며, 현실을 따라잡는 것 뿐이다.



자신이 본 연극 <클라우드 나인>의 '꽃잎은 어디에 있어도 꽃잎'이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나의 새로운 선택을 지지해 준 후배,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링크를 보내주며 주인공과 닮은 내 인생을 응원해 준 친구, 근사한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어떤 형태든 작가적 동지애로 지지하겠다는 동료... 내가 글을 쓰는 작가이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든, 청소를 하는 청소부이든, 나의 상태에 따라 나를 대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버티고 있음을 인정해주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바라본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히라야마가 청소 일을 하는 동안 잠깐씩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에서, 늘 같은 공원, 같은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면서 바라보는 하늘에서, 매일 밤 꿈속의 잔상으로, 나뭇잎의 흔들림과 그 사이로 흩어지는 햇살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매번 같은 것 같지만, 단 한순간도 같지 않은 미세한 흔들림, 움직임, 반짝임, 찰나... 그것을 흩어지는 불안으로 여길 것인지, 찬란하고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간직할 것인지는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내가 가는 곳이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Lou Reed - Perfect Day



 그동안 '원라이너'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라이너'는 새로운 기획으로 준비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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